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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이 오랫동안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셨던 터라 우리 가족은 네 사람 모두 방학이 있었다. 그 덕분에 오빠와 나는 어렸을 때부터 방학 내내 온갖 곳을 여행했다.

SUV도 아니고 정말 평범한 아반떼를 타고 조금만 방향을 잘못 꺾으면 깎아지르는듯한 절벽인 산길도 달렸고, 폭설이 내린 미시령 고개에 갇혀 하룻밤을 꼬박 지새기도 했다.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바퀴가 터져서 휴게소에서 집까지 렉카 뒤에 실려서 이동한 적도 있었고, 차도 사람도 없는 국도에서 기름이 똑 떨어졌던 적도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는 고속도로, 국도, 산길을 마다하지 않고 한 달을 꼬박 채워 여행을 다녔다. 방학 동안 집에서 잠을 잤던 날은 정말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으니까.

그 시절에는 요즘처럼 캠핑을 하는 사람이 많지도 않았고, 캠핑을 할 수 있는 제대로 된 곳도 없었다. 우리는 테트라포드가 늘어선 등대앞에 간이 바람막이로 차를 대고 그 뒤에 텐트를 치기도 했고, 숲 속이나 모래사장 위에 텐트를 치고 자기도 했다. 한 번은 바다 끝 수평선 위로 번개가 번쩍번쩍하는 와중에 해변에서 텐트를 치고 잔 적이 있다. 넷이 드러누우면 꼭 맞는 그 작은 텐트에 누워 잠을 자다가 새벽 광풍에 텐트를 고정시킨 핀이 모두 날아가버려 아직 껌껌한 바닷가에서 제비들과 우리 넷이 함께 뛰어다닌 적도 있다.

지리산 자락 계곡 옆의 간이 텐트장에서 스티로폼을 바닥에 깔고 텐트를 치고 며칠을 지내며 지리산을 오르다가 쌍코피를 쏟기도 했으고, 여름방학의 한 가운데, 8월이 생일이었던 우리 오빠는 그 지리산 자락에 텐트에 앉아 시골 마트에서 사온 미역으로 코펠에 끓인 미역국을 먹었다.

여행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면 여로를 풀 시간도 없이 곧 개학이었는데, 그 덕분에 학기 초 한 달 내내 코피를 쏟고 먹지도 못하는 당근을 갈아마시는 노고를 들였던 것도 잊을 수 없다. 물론 지금은 당근을 꽤 좋아하는데, 아마 그 때 한 달 내내 열심히 당근을 갈아마시며 수련(?)했던 덕분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이런 시간도 한 순간이었다. 오빠와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생이 되면서 우리에게도 방학은 마냥 쉬고 재충전하는 시간이 아니게 되었다. 공부할 것은 점점 늘어났고, 그것 뿐이 아니라도 부모님보다는 친구들과 보내야 할 시간이 점점 늘어나고 있었던 때문이었을 거다.

부모님의 시간, 부모님의 마음과 생각을 이해하기엔 우리의 머리는 너무도 작았던 것 같다.

어느새 우리 네 사람이 함께 마지막으로 여행을 떠났던 지 벌써 10년이 되었다.

아빠와 엄마는 10년 전, 아니 그보다 더 오래 전 우리가 텐트와 코펠세트를 차에 싣고 온데를 다녔던 그 시절과 마찬가지로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계신데, 오빠와 나는 많은 것이 변했다.

키도 머리도 커졌을뿐 아니라, 오빠는 직장인이 되었고, 나도 대학원생이 되어서 부모님과 한 집에 있는 시간이 거의 없다.

주말에 시간이 나면, 휴가가 생기면. 또 명절이 되어야 집에 찾아가고, 부모님과 시간을 보내게 된 것이다. 부모님 눈에는 우리가 아직 텐트 핀 하나 제대로 꽂을 줄 모르는 어린아이일테지만 말이다.


그래서 10년을 맞은 올 해 우리는 다시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졸업만 하면, 이번 시즌만 지나면, 조금만 더 돈을 모으고 나면. 이렇게 재고 따지고 하면서 기다리고 흘려보낼 시간이 더는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바로, 시간을 내고 하던 것을 다 중단하고. 그 때 부모님이 우리에게 해주셨던 것처럼 긴 시간을 들일 수는 없지만 잠깐이라도 그 때처럼 넷이 함께 여행을 가보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Posted by solle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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