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잔치는 끝났다>의 시인 최영미가 1995년 11월과 1996년 5월경 유럽 여행을 하며 쓴 에세이집이다.
사실 95년에 홀로 잠시 떠났을 때의 일기는 첫 장(章)인 '런던'에서만 많이 엿보이고, 거의 96년 봄 어머니와 함께 떠난 뒤, 어머니가 서울로 먼저 돌아가시고 홀로 더 여행했던 시기의 이야기가 들어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최영미라는 사람 개인보다도 8-90년대 대학생들, 특히 사회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지식인들은 이런 모습이었겠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 모습은 (생각보다 더!) 씁쓸하게 받아들여졌다. 선진국에 대한 동경과 우리나라에 대한 자조적인 시선, 그리고 새로운 것을 적극적이고 개방적으로 받아들이고자 하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지만, 아직 두려움을 충분히 극복하지 못한 소심한 뒷골목 지식인. 그렇기 때문에 쉽게 지쳐버리고 또 질려버리는 그들의 모습은 전혀 손을 내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게 했다. 약간의 안타까움이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내가 만약 손을 내밀었다고 하더라도 자조적인 비웃음을 날리며 팔짱을 풀지 않을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대학에서 서양사를 대학원과정에서 미술사를 공부했다고 한다. 그녀는 유럽 여행에서 미술관들을 빠짐없이 방문한다. 유명한 그림을 찾아보고, 또 그것들을 분석한다. 사실 그녀는 렘브란트를 만나기 위해 여행을 떠났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그녀의 유럽 "일기"는 어느 곳에 찾아가서 무엇을 보았는지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그 곳에서 그녀가 한 걸음 한 걸음을 걸으면서 머리와 몸으로 느꼈던 것들을 적은, 제목 그대로 "일기"에 가깝다.
"우리가 어느 한 장소의 혹은 한 사람의 본질을 가장 잘 깨닫게 되는 것은 그 속에 머물 때보다는 오히려 그것에 다가갈 때, 혹은 그것을 떠날 때인지도 모른다. 기대 이상의 즐거움을 경험할 것인가, 아니면 환멸을 맛볼 것인가는 어느정도 변덕스런 날씨나 그때그때 당신의 컨디션과 같은 우연의 폭력에 의해 좌우된다."
함께 다니는 어머니의 걸음 방향을 무시했던 것, 글로써 남긴 그것에 대한 후회, 심신이 지쳐 기차역을 떠나지도 않고 다른 도시로 이동해버린 일 등. 이 책에 담긴 글은 그녀의 발걸음이 머문 곳이 아니라, 걸어가는 걸음 걸음을 보여주는 것들이다.
연구실 선배님이 뜬금없이 읊어 알게 된 시 <서른, 잔치는 끝났다>는 내게 뜨거운 재같은 단어들이 날아다니는 시같다고 느껴졌다. 그 열기를 참지 못하고 훨훨 날아오르는 재처럼 강하고, 주체하지 못하고, 꾸미지 않은 단어들을 솔직하게 내뱉어버린 듯한 글이라고 느껴졌다.
"살아서 과거의 비를 맞는다는 사실에 아찔한 현기증을 느꼈다"
"나는 잔치가 끝났다고 한 적이 없다"고 말하는 그녀는, 여행을 하던 당시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알리게 된, 그리고 지금까지도 기억되게 만든 시 <서른, 잔치는 끝났다>의 작가라는 이름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에 자신을 깊이 사로잡아두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숲에서 "살아서 과거의 비"를 맞으며 과거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 존재의 현실을 깨달았던 것이 아닐까.
뜨겁게 공중으로 날아오른 재는 식어 다시 바닥으로 떨어지기 직전 무엇을 봤을까.
그 무엇과 눈을 마주쳤을까.
그 무엇이 아마도 '과거', 또는 자신이 아닌 척 자만했던 자신의 본래 얼굴은 아니었을까. 꼭 새로워지고 싶다는 열망-그 이유도 알지 못하면서-을 버리지 못하고, 우울감에 잠겼던 자신의 모습을 그제야 마주쳤던 건 아닐까 생각해본다.
손을 내밀고 싶지 않다고 느껴졌던 그 뒷골목의 자조적인 지식인은 결국 마음의 평안을 얻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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