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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내내 이 생각이 들었다. 바다에 빠져있는 사람은 자신이 젖고 있다는, 아니 젖어 있다는 사실 자체를 깨닫지 못한다는 것. 바다에 들어가 헤엄치고 있으면 자신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젖어있다는 사실 자체를 망각하게 된다. 하지만 바다 바깥으로 고개를 내밀어 보면, 또 손 한 쪽만 물 밖으로 내밀어 보더라도 내가 젖어있다는 것, 물 속에 푹 빠져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아예 육지에서 바라보는 사람의 입장에서 본다면 바닷 속은 완전히 구분되는 다른 세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닷속에 푹 빠져있는 사람은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이 책에는 다섯 명의 과학자가 '과학은?' 이라는 주제에 대해 쓴 글이 실려있다. 이분들의 글을 읽으며 내내 바다 속을 헤엄치는 고래가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아, 이 분들은 과학이라는 바다 속에 너무 오랫동안 들어가 있는 분들이다. 자신이 바다 깊은 곳을 헤엄치며 사는 거대한 고래라는 사실을 결국 잊어버리신 분들이구나.'


만약 육지에 있는 사람이 바다 속에 있는 사람에게 '바다란?', '물이란?' 하고 묻는다면, 바닷속에 있는 사람은 자신이 지금 당장 느끼고 있는 바와 경험한 것을 있는 그대로 솔직히 얘기해주면 가장 좋은 대답이 될 것이다.

바다란, 물이란, 차가워(어쩌면 따뜻해?) 끊임없이 내게 스며들어. 내 옷과 머리카락을 모두 적셔. 이 안에선 태양을 쳐다볼 수 있어. 끊임없이 움직여. 하나의 큰 덩어리 같지만 보이지 않는 알갱이들로 이루어져있어. 팔다리를 가만히 하고 있으면 가라앉아. 난 끊임없이 헤엄을 쳐. 나 말고도 물풀, 물고기같은 것들이 떠다니고 있어. 같은 설명. 이런 게 가장 좋은 대답이 되지 않을까?

과학은? 이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 역시 마찬가지가 되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과학이라는 바다 속을 헤엄치는 사람이 직접 느끼는 것, 지금 하고 있는 것에 대한 설명. 그런 게 '과학은?'이라는 질문에 대한 가장 좋은 대답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많이 아쉬웠다.


사실 과학이라는 바다 속에 깊이 들어간 사람들에게는 '과학은?'이라는 질문을 들을 기회 자체가 별로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과학은?'이란느 질문을 떠올려볼 기회가 아마 없었을 거다. 마치 바닷속에서 오랜 세월을 대대손손 살아온 고래가 바다가 무엇인지, 심지어 내가 바닷 속에 있는것인지 하는 질문에 대해서조차 생각해 볼 이유가 없을 것처럼 말이다.


이 책에 실린 다섯 개의 이야기 중 해양과학자 장순근 박사님의 글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이 분은 자신이 지금까지 경험했던 과학이라는 것, 자신이 배워오고 지금까지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있는 것 자체가 과학이라는 것을 알고 계셨다. 그래서 그것에 대해 설명하는 글을 쓰셨다. 내가 생각한 바로 그 대답이었다. 정말 만족스러웠고, 감사했다.


과학에 대해 하는 말 중 '과학은 어렵지 않다.'는 말만큼 많이 하고, 또 많이 들리는 게 없는 것 같다. 이 말은 사실 틀렸다. 과학은 어렵다. 하지만 과학은 재미있다. 이게 맞지 않나 주장해본다.

바다 표면에서 계속 헤엄을 치는 사람은 자신이 바다에 들어와 있다는 것과 자신의 몸이 끊임없이 젖고 있다는 것을 매 순간 자각한다. 표면에서 헤엄을 치는 것보다 숨을 참고, 압력을 이겨가며 바다 깊은 곳으로 들어가는 것이 더 어렵다. 하지만 한 번 바닷속으로 내려갔던 사람은 그 아름다움에 반해 계속 내려간다. 과학도 마찬가지다. 과학은 어려운 것이다. 표면에서 헤엄만 쳐서는 얻을 수 있는 것에 한계가 있다. 너무나도 힘들고 어렵다. 거기에 더해 외롭고 고독하기까지 하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바다 속으로 들어가면 아무도 나를 신경쓰지 않으며 잊어버릴 가능성도 아주 높다. 하지만, 깊은 곳으로 숨을 참고 내려가면, 고독과 잊혀짐으로 인한 슬픔을 이기고 내려가면 밖에선 그런 것이 있을 줄 상상도 못했던 것들이 나타난다. 그 아름다움에 빠지면 다시 나오기가 어렵다. 또, 그 아름다움을 직접 보게 하지 않고는 다른 사람들을 납득시키기도 어렵다. 과학은 그런 것이다.

누군가에게 '과학은?'이라는 질문을 듣는다면, 바다의 험함과 깊은 곳의 위험성에 대해 인쇄된 경고문 글귀를 읽어주는 게 아니라, 당신은 보지 못했고, 앞으로도 보지 못할 수 있지만 내가 봤던 그 아름다움을 가능한 한 잘 묘사해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과학은 어렵지만, 분명 재밌으니까.

Posted by solle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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