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2011년에 선물받았던 책인데 이제서야 책꽂이에서 꺼내 읽었다. 노보우를 그린 듯한 표지의 얼굴은 정말, 노보우 스럽게 내게 아무렇지 않은 듯한 표정을 지어보이고 있었다. 그래서 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책을 덮고 다시 책꽂이에 꽂아뒀다. 하지만 태연한 얼굴 속 내 마음은 넓은 초원을 말을 타고 마구 달리는 시원한 기분이었다.
이렇게 재밌는 소설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노보우는 바보, 얼간이같은 의미의 일본어라고 한다. 이 소설은 백성들에게 노보우라 불리던 성주의 사촌동생이 주인공이다. 하지만, 소설을 읽다보면 정말 노보우, 아니 본명으로 불러주자. 나리타가 주인공이 맞는지도 좀 헷갈린다. 오시 성의 다른 장군들은 너무나 뛰어나고, 노보우에 대해서 말할라치면 백성들이 그를 아끼는 마음이 노보우의 존재나 행동보다 더 중요한 내용 같다.
사람들은 그를 노보우라고 부르면서도 그가 하는 일이라면 아무렇지 않게 당연하다는 듯이 나서서 도와주고 자기 일처럼 여긴다. 노보우가 무서운 지배자라서도 아니고 그가 어떤 도움을 줘서 그에 보답하려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나리타는 모내기를 돕는다고 왔다가 일만 더 늘어나게 만드는, 그야말로 노보우다.
그런데 백성들은 왜 노보우를 이렇게 좋아하는 걸까? 그들의 말과 행동을 보면 분명 노보우를 아끼고 좋아하는 게 맞다. 그런데 이유는 그들 중 누구도 모른다. 노보우도 모르는 것 같다.
이런 노보우가 전국을 제패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군대가 몰려온 오시성을 지켜야 한다. 하필 군대가 몰려온 시점에 노보우가 통치를 하게 된 것이다.
소설의 앞부분에 나오는 노보우의 이상한 멍청함을 보고 이 소설의 결론도 여느 뻔한 전쟁이야기처럼 '그들은 최선을 다했으나 결국 대군에 패하고 말았다'거나 '최선을 다한 그들은 기적처럼 멋있게 승리하였다'가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특히나 오시성의 다른 세 장군들이 워낙 무예가 출중한지라 꼭 저 둘 중 하나의 결론이 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야기는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다.
결론은 꼭! 직접 소설을 읽어보고 내가 느낀 재미를 모두 느꼈으면 좋겠다. 소설 '노보우의 성'은 결론도 매우 중요하고, 그 과정도 당연히 중요한 오시성의 전투기다. 함부로 이 내용을 흘릴 순 없다(큭큭).
딱 하나 말하고 싶은 것은, 오시성의 장군들과 남녀노소 백성들 모두는 서로를 믿고 있고 서로를 진심으로 가족처럼 배려하고 있는데 그것이 엄청난 힘을 발휘했다는 거다. 서로가 예의를 지키고 남이기 때문에 배려하는 것이 아니라 좋아하기 때문에 그들을 배려해주는 그들의 마음이 엄청난 힘을 발휘하는 이야기라는 것만은 말할 수 있다.
너도나도 힘들다고 외쳐대는 시기다. 사회적으로도 그렇겠지만, 지금 내 시기가 그럴 때라서 더 그런 소리르 많이 듣는 것도 같다. 주위에선 힘들다는 얘기를 하지 않는 친구가 없을 지경이니 말이다. 서로 부러워하고 하루가 멀다하고 신세한탄할 사건이 쌓인다. 이런 상황에서는 가만히 들어주는 것도, 적절한 조언을 해주는 것도 지친다.
이런 내 눈에 소설 속 오시 성 사람들은 아주 색다른 이들로 보였다. 그들은 절대 자기한탄을 하지 않는다. 우선 자존감이 높고, 서로를 아주 잘 알고 또 좋아해서 네 일이 내 일이고 내 일이 곧 네 일인 게 당연한 사람들이다.
어쩌면 노보우가 정말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은 자였던 게 아니라, 오시 성 사람들의 이런 태도와 마음가짐이야말로 엄청난 능력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들의 마음이 어떤 상황을 맞아 괴력을 발휘할 수 있을만 한 토양이었던 거다.
어쩌면 사람들이 한탄을 하고, 그러느라 지쳐서 서로 마음을 뭉쳐 힘을 내지 못하는 게 위에서 누군가가 자꾸 조언하려하고 공감하는 척 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토양이 아니라 위에서 내려다보는 멋쟁이 꽃 한 송이가 있으니 자꾸 어리광이나 부리게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해 본다.
나리타는 자신이 직접 마구 줄기를 뻗고 꽃을 피워올리는 그런 지도자가 아니라, 정말 이런저런 꽃들이 알아서 예쁘게 잘 자라게끔 가만히 있는, 딱 알맞은 토양이었던건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야기가 완전 판타지같다가도 저자가 중간중간에 역사적 사실을 끼워넣어 설명하고 있어 소설의 무게가 너무 가벼워지지 않았던 것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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