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라는 건 참 신통방통한 도구다. 두 사람이 서로 이야기를 전하고 받는 매체라는 점에선 같지만, 마주보고 말로 하는 대화나 짤막한 문장들을 주고 받는 채팅과는 완전히 다른 어떤 점이 있다. 편지는 길다. 여러 가지 이야기가 한 통의 편지 안에 함께 담긴다. 그리고 문장을 완성해서 써야하기 때문에 쓰는 사람의 말투가 반드시 드러나게 된다.
이 책은 인터넷 여기저기서 책을 소개하는 문구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처럼 캠브리지 대학의 노교수인 할아버지가 손녀에게 인생을 살면서 알려주고 싶은 것들을 쓴 편지를 엮은 것이다. (이렇게 멋진 할아버지가!)
이 책의 저자인 릴리의 할아버지는 손녀딸과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 이상으로 지적 교류를 하고자 한다. 손녀가 십 년이 지나 더 자랐을 때 세상에 대해 가질 법한 질문을 해결하도록 도움을 주고 싶어 편지를 쓴 것이다. 여기 편지의 또 한 가지 신통방통한 능력이 있다. 바로 시간을 초월할 수 있다는 점이다. 편지는 꼭 상대방의 대답이 있지 않아도 한 쪽에서 보낸 편지 자체로 완전한 형태가 된다. 릴리의 할아버지는 자신이 릴리의 곁에 항상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자신의 말을 편지로 남기는 걸 택했다. 그런데 릴리가 십 년 뒤, 또 이십 년 뒤에 어떤 질문을 떠올리게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무슨 얘기를 해야할 지가 문제다.
릴리의 할아버지는 릴리에게 어떤 질문에 대한 자세하고 명확한 답변을 주지 않는다. 그는 편지를 통해 자신이 보고 겪은 것들, 그 경험을 통해 받은 느낌과 가지게 된 생각들을 릴리에게 알려줄 뿐이다. 릴리가 스스로 생각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그의 이야기를 좀 더 들려주는 것뿐이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준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답을 주거나 더 나은 대안책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스스로 더 많은 생각의 가지를 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더 많은 경험이 있다고 해서 항상 더 지혜로운 것은 아니다. 자신이 결론을 내려서 그것을 상대방이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일기에 풀어 쓰듯 개인적인 느낌과 생각을 얘기해주고 그것을 각자 나름대로 받아들일 때 그 경험의 가치도, 지혜도 더 커질 것 같다.
한 가지 놀랐던 점은 저자가 릴리의 친할아버지가 아니라는 점이다. 저자인 앨런은 릴리어머니의 어머니와 재혼한 사이로 릴리 어머니의 새아버지다. 저자는 편지 속에서 이 이야기를 했는데, 사실 별로 놀랄 일이 아닐 수도 있지만,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환경과 배운 것들을 바탕으로 생각해봤을 땐 조금 놀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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