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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편지책이다. 편지책을 좋아하는 나의 개인적인 취향으로 출판사 이벤트를 통해 선물받았다.


진정한 우정이란 게 있을까? 사랑에 대해서는 참 많이들 얘기하는데 우정에 대해서는 그만큼 많이 말하지 않는 것 같다. 사랑에 대해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우정도 다양한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우정을 맺고 있는 사람들 간의 관계, 우정이 시작된 계기, 우정을 유지하는 방법도 다 다르다.

이 책에서 편지를 주고받는 두 사람은 중년을 훨씬 넘어선, 장년의 유명한 소설가다. 게다가 한 사람은 미국에 있고, 한 사람은 호주에 사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소설가다. 요즘같은 때에 휴대폰이나 컴퓨터를 이용해 즉시즉시 연락을 주고 받을 수도 있지만, 이 두 남자는 편지를 주고 받는다. 타이프라이터로 편지를 써서 보내기도 하고, 팩스를 이용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천천히 편지를 주고 받으며 오래 전 당신이 했던 말들에 대해 깊이 숙고한 이야기를 전하는, 손편지나 다름 없는 느린 편지다.

이 두 사람의 우정은 흔히 볼 수 있는 유형의 우정은 아니다. 두 사람은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냈던 사이도 아니고, 취향이나 사고방식이 완전히 일치하는, '통(通)'하는 류의 친구도 아니다. 두 사람은 자주 스스로 생각하고 또 타인이 숙고한 내용을 받아들이는 것에 익숙한 사람들이다. 굳이 공통점이라는 말을 쓰자면 이런 그들의 태도가 그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들이 대화하는 태도는 매우 신사적이고 부드럽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동시에 자신의 주장을 완고하게 주장한다. 두 소설가는 상대방이 했던 말을 듣고 그에 완전히 동감하는 경우가 드물다. 그리고 같은 생각을 했다고 동감을 표현할 때도 그저 이런 "맞아맞아"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자신의 생각을 다시 전달한다. 반대로 상대와 다른 생각을 하는 경우, 상대의 생각을 우선 이해한 뒤 자신의 생각을 얘기한다. 자신의 생각을 굳이 전달하려하거나 이해시키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얘기할 뿐이다. 이들의 사유는 충분한 시간을 두고 재워진 고기처럼 연하고 부드러워 얘기하는 것만으로 쉽게 소화된다. 상에 내놓기 전에 충분히 깊이 사유하고 내놓은 덕분에 이들의 생각이 나누는 대화는 향기롭기까지 하다. 


누군가를 위로하는 모습이야말로 타인을 대하는 태도가 얼마나 성숙했는지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닐까 생각한다. 타인을 진심으로 대하는 사람이라 해도 경험이 부족하거나 충분히 성숙하지 않은 사람은 누군가를 위로하는 상황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이 경우 위로받는 사람도 충분한 도움을 얻지 못하고 위로하는 사람도 마음의 괴로움을 얻게 된다. 이들의 대화에서 서로를 위로하는 장면이 딱 한 번 등장한다. 바로 폴 오스터가 비난을 받은 상황에 대해 서로 대화를 나눈 부분이다. 존 쿠시는 단순히 상대방의 감정을 어루만져주거나 상황을 이성적으로 분석한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담아 숙고한 내용을 전달함으로써 폴 오스터의 마음이 안정되게 했다. 


이 둘은 사실 여러 문학 행사들에 초청을 받아 얼굴을 볼 기회가 종종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편지를 써서 대화를 이어나가는 이유는 바로 이 두 마디 말로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가난한 사람들이 마시는 컵 색깔에 관한 얘기를 듣는니 그런 것을 읽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대화는 그 단어의 참다운 뜻으로 볼 때 전화로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참다운 뜻'이 무엇인지, 우리가 진정 마음을 기울여야 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일. 그 생각을 나누는 일을 할 수 있는 상대가 존 쿠시와 폴 오스터에게 서로였던 것이다.

누군가를 이기거나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데 급급하게 살고 있는 요즘의 나(어쩌면 우리)에게 이들의 우정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Posted by solle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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