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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는 글보다 말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얘기하듯 써내려가는 것이고, 얘기하는 걸 받아 적은 것이 바로 편지다. 내가 편지책을 특별히 좋아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편지를 읽으면 그 사람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목소리를 들을 뿐 아니라 그사람의 표정, 몸짓까지도 눈 앞에 생생하게 그려볼 수 있기 때문이다.

번역된 편지책은 조금 사정이 다르다. 본래 그 사람에 대해 조금은 알고 읽는 것이 좋다. 물론 여기서 안다는 것은 어떤 사실을 정확히 안다는 게 아니라 독자로서 내가 그 사람에 대해 어떤 인상을 지니고 책장을 펼치는 것을 의미한다.

릴케의 편지글이 담긴 책을 세 권 읽었다.

한 권은 지난 1월 즈음 읽은 책으로 <릴케의 프로방스 여행>이다. 문학판에서 출판했고 황승환 님이 번역했다. 이 책은 릴케가 프로방스 지방을 여행하면서 지인들에게 쓴 편지를 엮은 것이다(이리나 프로벤 엮음). 릴케는 프로방스 지방을 단순히 관광 목적으로 여행한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편안하게 자연을 보면서 아픈 몸을 쉬고 글을 쓰기 위해 익숙한 고장에서 멀어진 것이었다. 이 글들을 읽으면서 내게 생긴 릴케라는 사람의 이미지는, 강인한 남성의 이미지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마냥 유약하고 어린아이같지만은 않았지만, 생각이 조금 지나치리만치 많고, 다른 사람을 대하는 데 있어 항상 상대방에게 중심을 두는 사람이었다.

릴케는 평생동안 수많은 편지를 썼다고 한다. 매일 아침 일어나 몇 시간씩 답장을 써내려갔다고 한다. 릴케에게 편지는 한 번 주고받는 안부인사가 아닌, 진정한 대화였던 것 같다. 그리고 대화라는 것은 그에게 있어 상대방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고, 또 자신의 진심을 전달하는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그러니 어디에 있던, 몸이 아프던 항상 편지를 썼을 것이다.

이런 릴케의 모습을 마음에 담은 채로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었다. 두 개의 출판사에서 서로 다른 번역자에 의해 옮겨진 두 권을 읽었다. 하나는 지식을 만드는 지식에서 출판하고 안문영 님이 번역한 <릴케의 편지>로,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와 '젊은 여성에게 보내는 편지'가 함께 엮여 있다. 다른 하나는 고려대학교출판부에서 출판하고 김재혁 님이 번역한 것으로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로 출간된 책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 마음엔 전자의 책이 더 들었다.

전자의 책에서 릴케의 말들은 길게 돌려가며 상대방에게 자신이 의도한 바대로 진심이 받아들여지길 고심한 문장들로 펼쳐졌다. 짧고 끊어지는, 단순한 문장이 아니었기에 한 문장을 여러 번씩 읽어야 이해가 가기도 했다. 그렇다고 어려운 단어나 표현을 사용한 것은 아니었다. 편지를 받는 이가 자신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읽는 이의 입장에서 표현을 골라 쓴 것이었다. 릴케 자신이 그러했으리라 생각하고, 번역가가 또 다시 릴케의 편지글, 그 마음을 헤아려 다시 쓴 것이다.

하지만 후자의 책은 문장이 너무나도 간결하고 딱딱 끊어지는 느낌을 줬다. 마치 군인처럼 강하고 명석한 남자가 자신에게 가르침을 구하는, 자신보다 어린 이에게 보란 듯이 교훈을 주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또, 돌려 말하기란 느낌을 받을 수 없었으며 가끔 훈계하는 듯하고 짜증스러움이 약간 비치는 듯도 하였다. 전혀 다른 두 사람이 쓴 편지 같았다.

이처럼 편지는 글쓰는 이의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글이다. 그 사람이 말하는 동안의 표정, 몸짓, 감정, 말 뒤에 숨겨진 진짜 생각까지 말이다. 어떤 글이 더 좋은 글이고, 무엇이 더 잘 번역되었다고 말 할 수는 없지만, 내가 <릴케의 프로방스 기행>을 읽으며, 또 내가 알고 있는 바에 의해 형성된 릴케의 이미지에는 안문영 님이 번역한 <릴케의 편지>가 더 맞았다.

다시 한 번 편지책의 매력을 절절히 느꼈다. 편지라는 것, 말이라는 게 전달하는 사람에 따라 이렇게도 한 번 더 달라지는, 쉽게 깨어지는 그런 것이구나를 책장 한 장 한 장을 넘기면서 느꼈다. 재밌는 경험이었다.

Posted by solle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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