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생부터 죽음까지 인간의 일생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꼭 거치게 되는 20가지 관문에 대해서 철학적으로 해석하고 설명한다. 이 책의 원제는 driving with plato다. 편안하게 자동차를 타고 드라이브하면서 우리가 편안하게 넘어갔던 인생의 관문들에 대해 철학적 의미를 살펴본다는 의미겠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이 책에 담긴 이야기를 드라이브하면서 듣는다고 생각하면, 좀 골치 아프다. 운전대를 잡고 길을 따라 가려면 집중을 해야 하는데, 옆에서 혹은 뒷자리에 앉은 플라토 할아버지가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한다면, 계속 "네? 네?" 라고 되물으며 돌아볼 것 같다. 그리고 방금 들은 말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정신을 딴 데 팔게 될 것 같다.
인생에서 누구나 거치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치게 되는 20가지 관문. 저자는 알랭 드 보통과 인생학교를 함께 세운 철학자 로버트 롤런드 스미스다. 인생학교가 어떤 곳인지 잘 모르겠지만, 로버트 롤런드 스미스가 '인간'이라는 종족의 일생을 바라보는 데는 사회가 정한 규범과 제도가 무척 중요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가 정한 20가지의 관문은 거의 사회적 제도와 닿아 있다. 결혼, 이혼, 취업, 졸업 등은 아주 분명하다.
나는 '자전거 타기'역시 사회 규범과 닿아 있다고 느낀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뒤에서 자전거를 잡아주던 기억. 어느 순간 아버지가 손을 놓아 버렸는데, 그걸 모르고 자전거를 계속 타고 나아가던 순간. 평범한 어른이라면 모두 가지고 있을 법한 기억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같은 생각은 전형적인 사회적 학습의 결과라고 볼 수도 있다. 만약 어린 시절 자전거를 타 본 경험이 없다거나, 자전거를 배워본 적이 없다고 하면 의아하게 여긴다. 왜? 나는 여기서 왜, 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다. 이 관문들을 단순히 인생의 중요한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을 설명하기 위한 '비유'로써 사용했더라면 좀 나았을 듯 싶다.
로버트 롤런드 스미스가 제안한 스무 개의 인생 '관문'들은, 너무나도 제도적이고 규범을 철저히 따르고 있다. 그가 설명하는 관문들은, 그리고 그 관문을 거쳐가는 인생을 상상해보는 건 마치 60년대의 풍경 같다. 인생에 정해진 순서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부터 사실 고리타분한 걸지도 모른다.
사실 서로 다른 개인들에게 인생의 관문들은 다른 의미를 준다. 그리고, 그 관문 자체보다도 관문을 거치느냐, 마느냐 자체에만도 깊은 의미가 있다. 그래서 그 관문, 제도와 규범 자체에 집중했던 스미스의 '의미 부여하기'는 얕은 물에서 발갉을 퐁당거리는 수준이 되어버렸다. 6,70년대 부모님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고 '올바르게' 나아가기 위한 지침서인 것만 같다.
6,70년대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면, 이 책의 '중년의 위기', '은퇴', '늙어감'같은 장을 읽어보는 것이 깨달음을 줄지도 모르겠다. 그 앞의 장들은 아마 추억과 향수를 불러올지도 모르겠고 말이다.
아무튼, 이 책은 나에게 인생에서 중요한 단계가 무엇인지도, 그 중요한 단계가 가지는 '철학적 의미'가 무엇인지도 깊이 있게 전해주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그 단계들에 대해 얕지만 장황하게 설명하는 플라토의 얼굴을 상상하며 운전을 하다간, 가로수를 들이받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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