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름까지 우리 집은 관악구였다. 집 근처에 공항버스 정류장이 있었고, 그 버스는 도심을 가로질러 그리 오랜 시간 걸리지 않고 인천공항까지 닿았다. 또, 서울역까지 금세 가는 버스도 집 앞에 섰다. 이 버스를 타고 서울역에 가 공항철도를 탈 수도 있었다. 여태껏 공항에 갈 때는 그렇게 쉽게쉽게만 갔었다.
그런데 우리 집이 이사를 했다. 멀디먼 강동지역이다. 비행기 시간은 오전인데, 부모님과 오빠가 편안하고 여유롭게 면세점도 이용했으면 싶었다. 출국일을 이틀 앞두고 공항버스 노선을 살펴봤는데, 이게 웬걸. 우리 집 근처에는 공항버스 노선이 지나질 않는 것이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라고 쓰고 놀랍게도라고 읽는다.) 인천공항까지 가는 시외버스가 있었다. 또 좀 많이 오래 걸리긴 했지만 지하철을 타고 갈 수도 있었다. 출국 비행기가 10시 정도였던 터라 지하철 첫차를 잡아 타고 두시간은 일찍 공항에 도착해야지, 그래서 오빠가 면세점 구경을 실컷 하게 해야지. 하고 생각했다.
지방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던 나는 출국 전날 오후에야 집에 올라올 수 있었다. 집에 오자 엄마는 집에서 그나마 제일 가까운 공항버스 노선을 미리 찾아두신 터였다. 새벽에 일어나서 택시를 타고 정류장에 가자고. 공항버스는 말 그대로 공항입구까지 가는 '우등버스'다. 하지만 이용요금이 매우 비쌌다. 게다가 우리 집 바로 앞이 버스터미널이다.
지하철을 새벽같이 잡아타고 가기는 무슨, 우리 중 누가 한겨울에 민소매 입는 열혈청년이냐.
바로 공항까지 가는 시외버스 네 좌석을 예매했다. 부모님이 매우 좋아하셨다는 건 말 할 필요도 없다. 집을 나서면 코앞이 버스 터미널인데다 요금은 공항리무진 가격의 반도 안 됐던 걸로 기억한다.
짐도 다 챙겼고 공항까지 가는 버스표도 예매했으니 모든 준비가 되어 있었다. 회사에서 출국 전날 자정이 다 되어 집에 돌아온 오빠는, 그 바쁜 와중에 어디서 났는지 셀카봉도 챙겨왔다.
그런데 문제가 터졌다.
우리가 일본으로 여행을 떠난 주는 한국에 기록적인 한파가 몰아닥쳤던 주였다. 안그래도 무지하게 추웠던 지난 겨울이었지만, 그 주는 정말 지독하게 더 추웠다. 우리가 내일의 출발을 기대하며 한창 잠을 자고 있는데, 부엌께에서 낭랑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이었다.
"난방을 종료합니다."
'...?! 잠결에 이게 뭔 소리지..'
집에 잘 오질 않으니 내 방은 보일러를 틀지 않는다. 그래서 안방 침대의 엄마 옆자리는 내가 차지하고, 아빠는 거실에 깔아 둔 전기장판에서 주무시고 계셨다. 아빠가 부스럭 일어나시는 소리가 들리기에 나는 머리도 움직이지 않고 다시 눈을 감았다. 아빠의 목소리가 들리고, 엄마도 일어나 부엌으로 가셨다.
급작스레 떨어진 새벽 기온에 보일러가 얼어붙어버린 것이다. 부엌베란다에 설치된 보일러 기기 아래에 물이 똑똑 떨어진 흔적이 보이고 작동 버튼을 누르면 채 십분을 버티지 못하고 자동으로 난방이 종료되었다. 다음날 버스를 타러 집을 나설 때까지, 아빠 엄마는 밤새 한숨도 못 주무시고 낭랑한 목소리의 여성과 씨름을 하셨다. 부모님의 은혜로 괴로워도 슬퍼도, 아니 괴로울만큼, 눈물이 날 만큼 추워져도! 나는 그대로 꼼짝않고 새벽까지 잠을 잤다.
당장 나흘 동안 집을 비워야 하는데, 이를 어찌해야하나. 자칫하면 보일러가 심하게 망가지고 우리가 집에 돌아온 뒤에도 이 추운 겨우내 작동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서비스센터와 통화 연결이 되기에도 시간은 너무 일렀다. 달리 취할 수 있는 조치가 아무 것도 없었다.
일단 가야지 뭐 어떡해.
밤새 잠을 못 주무셔서 피곤한 얼굴의 부모님과 함께 우리는 버스 터미널로 갔다. 정말 매서운 추위였다. 버스에 올라타 꽝꽝 언 차창을 보며 난, 보일러가 저절로 녹기는 틀렸으니, 차라리 냉동인간처럼 일순간 꽝! 얼어버려 더 이상 아무 변화도 없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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