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여행에 대한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필요한 물품을 준비하여 배낭에 넣고 떠나는 여행. 경비를 절약하고 생생한 체험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음은 네이버 한자사전에 실린 정의다.
①최소한의 경비를 들여서 하는 여행을 이르는 말 ②필요한 물품을 미리 준비하여 배낭에 넣고 다님
해외여행을 간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공항 체크인카운터에 가서 멋있게(?) 캐리어를 부치는 걸 떠올릴 것이다. 비행기=캐리어 라는 공식. 나에게는 성립하지 않는 공식이다. 수하물을 기다리고 찾는 걸 정말 싫어하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 이것만큼 에너지를 허비하고 시간을 낭비하는 일은 없다.
이름 모를 사람들의 온갖 살림살이가 들어 있을 거대한 보퉁이들이 쏟아져 나온다. 속이 안 보이는 목구멍이 우웩거리면 그것들을 뱉어낸다. 올라오는 덩어리들은 다 그게 그거처럼 보이는데, 그 똑같은 놈들이 저마다 좀 다른 체를 한다고 애를 쓰니 참말 보기 역겹다. 거기다 더해 그 목구멍이 해대는 토악질은 그 순서까지도 뒤죽박죽이다. 정말 미칠 노릇이다. 그 중에서 내 걸 찾겠다고 눈을 부릅뜨고 있는 건 정말, 나에게 시간과 에너지를 허비하는 일 그 자체로밖에 여겨지지 않는다.
여행갈 땐 최소한의 짐-매 순간 존재를 확인해야 할 정도의 귀중품은 많아도 세 개 이내(보통 여권이나 신분증을 담은 지갑, 카메라가 리스트를 차지한다.)인-을 싸는 것, 웬만한 짐은 여행 중에 하나씩 버리고 돌아올 땐 기념품만 담아오는 것이 나의 여행 규칙이다. 스물 세 살에 떠났던 배낭여행이 그랬다. 남들처럼 예쁜 원피스에 커다란 챙이 달린 밀짚모자 쓰고 바람에 긴 머리를 나부끼며 찍은 인생 사진같은 건 없지만, 부러움을 샀으면 샀지 아쉬울 건 없다.
유럽으로 배낭여행갔을 때. 스위스 베른에서 동행한 친구가 뒤에서 찍어준 사진이다. 저 배낭에 쪼리 하나 달고, 그렇게 다녔다.
이런 철칙이 있는 내겐 가족 여행도 예외가 아니었다. 나에겐 시간과 체력을 비축하는 일이 가장 중요했으니까. 아빠, 오빠와 내가 각자 배낭 하나를 가볍게 메고, 엄마와 내가 각각 보조가방을 든 게 전부였다. 어차피 3박 4일밖에 안 되는 겨울 여행이어서 이정도로 충분하기도 했다. 다행히도.
솔직히, 떠나기 전 날 밤, 오빠는 헤어 스프레이와 렌즈(+렌즈세척액)을 챙길까 말까 많이 고민했다. 하지만 수하물 찾는 것을 기다리지 않겠다는 내 포고에 몇 번을 넣었다 뺐다 하더니 결국 내려놨다. 여행을 다녀온 후 오빠는 안경 쓰고, 모자 쓴 채 내 핸드폰에 찍힌 사진들을 sns 프로필에도 올렸다.
배낭여행은, 짐을 최소화해서 배낭에 메고 다니는 여행을 가리키는 말이다. 젊은이들이 돈 아껴가며 거지같은 옷차림으로 고생하며 다니는, 그런 여행을 가리키는 말은 아니다. (돈을 쓰지 않고 밥도 얻어먹고 잘 곳도 빌어서 떠나는 '무전여행' 역시 이런 의미-거지같은 옷차림. 고생.-는 아니고 말이다)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배낭여행도 충분히 고급스럽고 우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여행을 떠나기 전에 이것저것 자꾸만 짐을 불리는 이유는 뭘까. 아마도 낯선 그 곳에 떨어졌을 때 나를 도와줄 친절이 얼마나 될까 믿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 친절은 믿는 사람에게만 다가온다. 믿고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있는 사람에게만 보인다. 여행지에 대해, 특히 안전에 대해 묻는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어차피 다 사람 사는 곳'이라는 얘길 많이 한다. 물론 '어떻게 사람이 살지?'싶은 곳도 세상에 많이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그건 다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이다. 영화 <천번의 굿나잇>에서 주인공이 찾아다니는 지역이 바로 그런 곳 아닌가.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배낭여행도 충분히 우아할 수 있다. 여행을 하는 것은 일상을 내려놓고 새로운 생활을 단 며칠이라도 해보는 데 의미가 있지 않은가. 며칠짜리 아주 다른 삶을 살아보는 것. 매일 같던 일상과 다른 하루를 보내는 걸 고생이라고 할 순 없다.
고생은 오히려 피할 수 있으면 피해야 할 존재이다. 심신을 지치게 하는 건 어떤 이유에서건 좋지 않다. 고생할 걱정으로 가득한 사람은 여행길에서 끊임없이 지치게 된다. 하지만 그곳에서의 삶, 새로운 일상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사람은 다르다. 그렇다면 끊임없는 친절을 마주하게 된다. 친절이 있다면, 그 친절의 존재를 믿는다면 우리의 가방은 그렇게 무거울 필요가 전혀 없다.
'天변 도로 > 후쿠오카 가족여행, Jan.2015' 카테고리의 다른 글
[day1] ④ 하카타판 '삼시세끼' (0) | 2016.08.19 |
---|---|
[day1] ③-2. 친절함은 그저 믿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것. (0) | 2016.08.18 |
[day1] ② 떠난다는 건 마음에 있는 것까지, 다 두고 가는 거야. (0) | 2016.08.16 |
[day1] ① 보일러는 다녀 와서 생각해. (0) | 2016.08.15 |
유후인 타츠미 료칸 (4) | 2016.02.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