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아빠를 빼닮은 딸이다. 마른 몸에 턱이 갸름한 얼굴, 혼자만 길쭉해서 발톱이 굽어지게 만드는 두 번째 발가락같은 건 그냥 두고, 아빠랑 내 손은 정말, 똑같이 생겼다. 전체적인 손의 모양뿐 아니라 손톱 하나하나까지 정말 똑같이 생겼다. 아빠의 손과 내 손은, 크기를 가늠하지 못하게 사진을 찍어 놓으면 누구 손인지 분간할 수 없을 만큼 닮았다. 사실 손 모양보다 더 닮은 게 있는데, 꼼꼼하고 고집 센 성격이다.
어릴 적부터 여행을 갈 때면 짐을 싸는 건 거의 엄마의 몫이었다. 조리도구나 음식, 옷가지같은 것들의 사정을 아빠는 잘 모르는 때문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분명 채비를 챙기는 건 엄마였는데 아빠가 짐 챙기는 것을 엄마에게 완전히 맡기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그리고 우리 엄마의 챙김은 아빠의 꼼꼼함 기준에 미치지 못했다.
차를 출발시키는 순간 "아 맞다!" 소리가 나지 않으면 이상하다고 여길 정도로, 매번 엄마는 하나씩 뭔가를 빠뜨렸다. 그렇게나 여행을 많이 다녔는 데도 매번 "아 맞다!"는 참 꼬박꼬박도 나왔다. 엄마가 정말 뭔가를 빠뜨린 것인지, 아빠의 '챙겼어야 할 목록'이 자꾸만 늘어난 것인지는 모를 일이다.
아무튼 엄마는 수십 번의 여행을 다니면서 수십 개의 "아 맞다!"를 모았다. 그렇게 모인 "아 맞다!"들은 엄마의 마음 속에 차곡차곡 쌓였다. 그 사실은 나도, 오빠도 잘 알고 있었지만, 그 "아 맞다!"를 치워버리는 방법은 모르고 있었다. 우리에게 그건 모래알처럼 작고 가벼운 알갱이처럼 보였다. 그래서 입으로 가볍게 후- 바람을 불면 치워버릴 수 있을 거라고 여겼다. 하지만, 엄마에게 그 "아 맞다!"들은 그렇게 쉽게 훅 날아갈 모래 알갱이가 아니었다. 모래알들은 분명 작고 가볍지만, 물에 젖으면 죽도록 안 떨어진다. 찰싹 붙어서 떼어내면 또 달라붙고, 더 달라붙는다. 엄마의 가슴 속에 쌓인 "아 맞다!"들은 딱, 그런 존재들이었다.
이번 여행에서도 엄마의 "아 맞다!"들은 제 역할을 잊지 않았다. 너무 오랜만이라 반갑다는 듯 그 녀석들은 순식간에 물이 푹 젖어 우리 엄마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우리 가족은 출국심사대를 거치면 바로 나오는 터미널이 아니라, 트레인을 타고 이동해야 하는 터미널에서 비행기를 타게 되어 있었다. 아빠와 오빠, 내가 각자 배낭을 하나씩 메고 엄마와 나는 보조가방을 각각 하나씩 들고 있었다. 문제를 일으킨 물건은 바로, 전날 밤 우리 가족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던 '셀카봉'이었다.
겨울 휴가철이 몰렸던지 공항은 체크인 카운터부터 내내 사람들이 바글거렸다. 출국심사대를 통과하면서 가방을 하나씩 내리고, 두꺼운 겨울 겉옷을 벗는 사이 그 녀석이 감쪽같이 어디로 빠져버린 것이다. 게다가 우리는 이 녀석이 사라진 걸, 트레인을 타고 다른 터미널로 이동한 뒤에야, 게이트 앞에 가서야 알았다. 그 녀석은 트레인을 타기 전에 이미 떨어뜨린 뒤였다. 내 보조가방이 더 작았던지라 출국심사대로 들어가기 전에 엄마의 보조가방에 찔러 넣었던 게 잘못이었다.
셀카봉을 잃어버린 엄마의 마음은 이미 푹 젖어버렸다. 엄마는 일본에 내릴 때까지 다시 만난 "아 맞다!" 때문에 속상해하셨다. 오빠와 나는 엄마 마음의 그 모래를 치워 버리려고 무던히도 입김을 불어댔지만, 그놈의 모래들은 쉽사리 마르지 않았다. 오히려 지들끼리 더덕더덕 들러 붙어댔다.
그깟거 하나 없으면 뭐 어때! 오빠와 나는 전에 없이 더운 바람을, 헤어 드라이기마냥 열심히 불어댔다.
다행히 일본에 도착해 입국 심사대를 통과한 뒤, 엄마의 마음 속 모래알들은 말끔히 말라 흩어져 있었다.
떠난다는 건 여기에서 저기로 떠날 때나, 이 일에서 저 일로 떠나갈 때나, 떠난다는 건 말이다. 무엇을 챙겨 간다는 것과 함께하는 게 아니다. 떠나간다는 건 모든 걸 두고 가는 일이다. 내려 놓고, 뒤에 남겨 두고 가는 것이다. 무언가를 좀 두고 가면 어떤가. 하나하나 다 챙기려다간 떠나지 못하게 된다. 손이 무거우면 걸음이 느려지는 법이다.
뭐 하나 빠뜨리면 어때. 그깟거 하나 없으면 뭐 어때!
셀카봉같은 것 없이도 우리 가족은 네 사람이 함께 나오는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그보다 서로를 찍어주며 즐겁고 행복했다. 그거면 된 것 아닌가.
무얼 준비하고 무얼 챙겨가는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딛고 지나선 그 순간 순간을 잘 두고 가는 것이 중요하다. 잘 두고 가는 것, 잘 내려놓고 마저 나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떠난다는 것은 마음에 있는 것까지, 모조리 다 두고 가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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