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다보면, 그리고 연구실 생활을 하다보면, 한 끼 정도 거르는 건 별 일도 아니다. 그리고 제 시간에 밥을 먹는 건 더욱 더. 지난 몇 년 동안 내게 '밥때'라는 건 없었다.
살아야 하니까 아침을 먹었다. 아침이래봤자 빵조각이나 미숫가루 같은 것. 방에 있는 먹을거리를 연구실로 걸어가는 길에 씹어 위장으로 넘기는 일이었다. 점심 때를 맞춰 다른 연구실 사람들과 식당에 밥을 먹으러 갈 수 있는 날은 많지 않았다. 점심 때를 놓치고 오후를 맞는 날은, 당이 떨어지고 눈앞이 헤롱거릴 때가 되어서 뭐든 집어먹었다. 오렌지 한 알이나 떡 한 덩이, 고구마 하나 같은 것. 좀 심하다, 싶으면 뛰어서 오 분 거리쯤 있는 프랜차이즈 베이커리, 도넛가게에 가서 열량 높은 밀가루반죽을 하나 사 먹었다.
이런 게 생활이 되었으니 제 때 배가 고픈 일도 별로 없었다. 내게 식사는 아침, 점심, 저녁 적절한 시간에 밥을 챙겨 먹는 것이 아니라, 배가 고파오거나 머리가 안 돌아갈 때, 즉, 당이 떨어질 때 열량을 보충하는 일이었다.
부모님과 함께 처음 제대로 된 해외여행을 하면서 깨닫거나 배운 것을 꼽으라면 딱 이거 하나다. 밥은 하루 세 번, 제 때에 편안한 마음으로 잘 챙겨먹어야 한다는 것.
나의 엉망진창 식사 습관은 여행 첫 날부터 그 빛을 발하고 말았다.
하카타역에 도착하면 점심 때가 될 텐데, 일본에서의 첫 끼니로 무얼 먹을까 고민을 많이 했다. 부모님의 외국 음식 취향을 전혀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으로 날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두 곳의 첫 끼니 후보 음식점 중 부모님께 하나를 골라보시라고 했다. 하나는 평범하고 사람도 그리 많지 않을 것 같은 밥집이었고, 하나는 매우 유명한 철판 햄버그스테이크 전문점이었다.
부모님은 어딜 골라야 할지 잘 모르겠다고 하셨고, 아무래도 맛집을 가봐야지! 하는 마음으로 나는 햄버그스테이크집을 가보는 게 낫겠다고 결정했다. 오빠는 사람만 아주 많지 않으면 좋을 것 같다고 동의해주었다.
하카타역은 기차를 타는 커다란 중앙 역사가 있고, 지하에는 지하철/전철이 연결되어 있으며, 옆에는 버스 터미널 건물까지 있다. 우리가 가려는 햄버그스테이크집은 버스 터미널 건물의 바깥 외벽쪽에 자리를 잡고 있다. 처음 간 상태에서는 그 위치를 짐작하기 어려웠으나, 버스터미널 안에 들어가 상점 주인에게 물어보니 친절하게 설명을 해줘서 금세 찾아갔다.
와, 도착해보니 벌써 가게 앞에 예닐곱 명이 줄을 서 기다리고 있었다. 십 분 정도 대기를 해야 한다고 했고, 그 정도는 괜찮다는 생각이었다. 아빠 엄마는 오히려 줄 서서 먹는 걸 보니 정말 맛집인가 보다, 며 기대감을 보이셨다.
기다리는 동안 메뉴를 고르고, 순서가 되어 가게 문을 열고 딱, 들어섰는데, 가게 안은 그야말로 음소거 상태의 난리통이었다.
그 가게. 후쿠오카 철판 스테이크로 유명한 '키와미야'의 모습. 버스터미널 바깥벽쪽에 이렇게 자그마한 가게가 붙어있다. 안에 들어가면 테이블이 있고, 그 너머로 주방에서 스테이크 뭉치는 모습이 계속 보인다.
딱 한 줄짜리 테이블이 가게 중앙에 있는데, 그 테이블 하나로 가게가 가득 들어찼다. 마치 길따란 오뎅 바처럼 되어있는 테이블로, 사람들이 서로를 마주보고 음식을 먹는데, 겨우 열 명 정도가 앉을 수 있었다. 우리 네 사람도 옆으로 주르륵 앉아 밥을 먹었다.
이 집은 각자 자기 앞에 철판을 두고, 거기에 햄버그스테이크를 조금씩 뜯어 직접 구워먹는 방식이라 가게 안에 연기가 자욱했다. 고기냄새, 양념냄새에 기름까지 잔뜩 배인 연기는 자리에 앉기도 전에 옷에 한가득 스며들었다. 그리고 뜨거운 철판 덕분에 고기를 떼어내기도 전에 기름이 마구 튀었다.
한국인들이 얼마나 그랬으면. 밥은 한 공기씩 각자 시켜야만 하고 절대 나눠먹지 못하게 종업원이 칼처럼 감독했다.
고기는 맛있었다.
부모님과 오빠, 나는 이 말 밖에 할 수가 없었다. 고기는 맛있었다,고.
이렇게 직접 뜨거운 철판에 고깃점을 떼어내서 구워먹는다. 연기와 기름이 무지하게 난다. 고기는 물론, 맛있다. 양념도.
아빠가 찍으신 사진. 사진 찍고 얘기하고, 서로 다른 메뉴 시킨 걸 나눠서 맛보거나 밥 한 공기에 엄마가 젓가락질 한 번을 못하게 해서. 물론 이해하지만, 아빠랑 엄마가 이해하지 못하시는 것도 당연한 걸. 이걸 모르고 부모님을 '모시고' 여행하겠다고 한 나는 바보였네.
부모님은 그런 '불편한 밥상'에 익숙하지 않으시단 걸. 나는 그걸 몰랐다. 두 분이 밥 한공기를 시켜서 한 두 젓갈씩만 드시려고 하는데 그걸 막는 종업원을 이해하기 어려우실 걸, 기름이며 연기가 가득하고 그렇게나 비좁은 책상에 다닥다닥 앉아 밥만 후딱 먹고 일어나야 하는 상황이 당황스러우실 걸 나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렇게 정신없는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기차를 타기 위해 다시 역으로 들어갔다.
식사는 편안하고 느긋하게. 하루 세 끼 제 시간에 맞춰서. 이 쉬운 걸 잘 못지키면 금세 지친다는 걸 나는 몰랐다. 그리고 너무나도 당연한 이것에 익숙해지는 데 나는 꼬박 이틀이 걸렸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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