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인간>에서 성석제작가는 매우 자유로운 시점 이동을 보여준다.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처럼 공간을 따라 이 사람에게서 저 사람에게로, 마치 공기를 타고 숨이 옮겨가는 것처럼 시선이 넘어가는 것과는 또 다르다.
<투명인간>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을 김만수의 삶은 그를 낳고, 기르고, 지켜보고, 그와 스쳤던 수많은 사람들의 눈과 입을 통해 재구성된다. 사실 이런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만수가 주인공이라고 주장하기도 어려워진다. 만수와 한 번이라도 스쳐 지나간 그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입장에서 자신의 삶을 이야기한다. 만수의 삶이 아닌 각자의 삶에 대해, 그리고 거기서 자기를 조금씩, 조금씩 투명하게 만들었던, 바이러스인지 물질인지 알 수 없는 그것에 대해 얘기한다. 이야기를 하는 그 모두가 이 소설의 주인공이며, 서로가 서로의 몸에 포개지고 투과되는 '투명인간'들이다. 소설의 처음과 마지막에 등장하는 화자가 이 '포개짐'을 완성한다. 분명 자신의 이름을 가진 김만수의 직장 상사였는데 어느새 김석수가 되어 형을 부르고 있는 것이다.
정신없이 살다보면 내 손에 쥐여진 게 무엇인지, 내 얼굴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수 없게 될 때가 많다. 깜빡 잊어버렸던 듯, 멍하니 내 손을, 거울 속 내 얼굴을 들여다본다. 정신이 번쩍 들고 돌덩이가 들어찬 듯 몸의 무게를 느끼며 나의 존재감을 다시 느끼게 될 수도 있지만, 그보다 내 손이 한없이 투명해진 것 같이 느껴질 때가 실은 더 많다. 왜 이렇게 투명해졌지, 내 모습이 왜이리 안 보이지, 의문이 들지만 그에 대한 답을 구해야 할 필요성조차 속에 남아있지 않다. 존재가치라는 건 투명한 내 손 사이로 다 흘러내려 빠져나가버린지 오래다. 누군가에게 빼앗긴 것도 잃어버린 것도 아니다. 보이지도 않고, 모든 게 그저 흘러내려버리는 상태. 투명해져버리는 것뿐이다.
그렇지만 투명인간들은 분명 거기에 존재하고 있다. 보이지 않아도 내 머리는 그들이 어느 곳에서 어떻게 사는지까지 속속들이 알 수 있다. 그렇게 느낌은 생생한데 어쩌다 잠깐 마주치더라도 그들은 잠시 고개를 돌리는 새, 팔뚝에 잠깐 선크림을 바르려는 찰나에 사라져버리고 만다.
날 때부터 그 큰 머리 덕분에 눈에 아주 잘 띄었던 김만수는 '인간관계'라면 누구에게 뒤지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눈에 잘 띄는 사람이었던 그는 결국 투명인간이 되고 말았다. 그 뿐만이 아니다. 그의 아내도, 동생이 낳은 아들도, 연탄가스를 먹고 '프랑켄슈타인'이 되어버린 누나도 조금씩조금씩 투명해져갔다. 그의 가족은 투명인간 가족이 되어버렸다. 어쩌면 몇 살까지 살다 죽든, 사람이 그 모습을 세상에 드러낼 수 있는 양은 제한되어있는지도 모르겠다. 만수는 날 때부터 오이같이 길쭉하고 커다란 머리 때문에 그 기회를 남들보다 빠르게 써버렸고, 누구보다 빠르게, 가족들까지 끌어들여 투명인간의 세계에 들어간 건지도 모르겠다.
누구보다 더, 너무 열심히 살아서.
만수의 할아버지부터, 만수의 새끼들이 클 때까지 한국 사회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그 안에서 어떤 사건이 일어났고 노동자는, 지식인은, 학생들은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찬찬히 눈에 들어온다. 그 안에서 정말 착실히, 열심히 살았던 김만수는 결국 투명해져버렸는데, 나는 어떻게 될까.
나도 세상이 어떻게 변하는지 모르고, 그 속에서 나를 녹이며 살다보면 결국 투명해져버리고 말까. 선크림을 바르는 그 찰나에, 사라져버리게 되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만수처럼 아내도, 새끼도, 누나도 함께 투명해진 채로 한강에서 돼지껍데기 사먹을 수 있다면, 그렇게 공허하지만은 않을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책의 맨 뒷장엔 2014년 초여름에 쓴 작가의 말이 짧게 들어있다. 그 때였을까. 사랑하는 사람들이, 투명인간이 되어버렸던 그 때. 온 나라가 슬픔에 잠기고 사랑하는 사람이 더 이상 내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고, 목소리 들리지 않게 된 그 때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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