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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초콜릿, 맥주, 커피, 빵. 이 다섯 가지 식품은 저자인 심란 세티의 국적인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를 통틀어 대표적인 음식이라고 할만한 것들이다(저자는 자신이 사랑하는 '기호식품'이라고 했지만, 빵은 아무래도 부식보다 주식에 가깝다고 생각되기에 '음식'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하게 보인다).

이 다섯 가지는 전 세계의 수십억 사람이 매일 먹는 음식이지만, 이 음식을 먹는 사람들의 다양성과는 정 반대로 이 다섯 가지 음식을 만드는 원료작물, 음식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나 결과적으로 우리 입에 넣게 되는 음식의 형태와 맛은 매우 단일화되어 있다. 이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우리는 매우 다양한 맛의 와인, 초콜릿, 맥주, 커피, 빵을 맛보고 소비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모두 '착각'이다. 우리의 미각은 이미 무뎌질대로 무뎌졌고,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 섬세한 미각을 충족시킬 수 있을만한 원재료 자체가 이미 대부분 사라졌다.


저자 심란 세티는 심각하게 말하지 않는다. 물론 그녀는 진지하다. 정말 진지하지만, 그녀는 정말 단순하고 평범한 한 명의 소비자에 불과하다. 원재료의 다양성이 소실된 현실로 들어가는 문에 겨우 다다른 사람이다. 사실은 우리 대부분이 그렇다. 그렇기에 이 책은 편안하고 쉽게 읽힌다. 다만 그녀의 책을 읽는 것으로 끝나면 안 될 것이다.

이 책은 사실 저자의 농장 여행기, 공장 견학기에 불과하다. 또는, 유명한 와인샵, 커피샵, 브루어리 등에서 전문가와 함께 시음/시향회를 처음 겪어본 경험담에 불과하다. 하지만, 진정 와인, 초콜릿, 맥주, 커피, 그리고 빵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 글 뒷면에 묻어있는 영상을 마음 속에 재생시킬 수 있을 것이다. 전문가이고 애호가일 것이라서 가능하리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게 바로 저자인 심란 세티가 독자들에게 바랐던 일일 것이다.

그녀가 이렇게 쉽고 편한 책을 쓴 것은, 약간은 어린 아이같은 투덜거림과 어려움을 토로하는 목소리를 담은 채로 책을 펴낸 것은 그녀를 보며, 우리도 그러한 섬세한 미각을 찾을 수 있고, 관심가질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길 바라서였던 건 아닐까 한다. 무겁고 진지하게 '생물 다양성'에 대해 얘기하기 전에, 우리가 사랑하는 음식을 떠올리며, 그것들에 대한 '진정한 사랑'의 태도가 무엇일지 한 번 더 진심으로 고민해보길 바랐던 것 같다.

사라져가는 그 맛들, 향기들, 그리고 그것들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손길을 기억하고, 기억함으로써 지구 어느 곳 아주 작은 땅 한덩이에서 힘겹게 버티고 있을 그것에게 아주 약한 텔레파시를 보낼 수 있으면 좋겠다.


(+책의 맨 뒤에 실린 플레이버차트가 참 예쁜 건 여담)

Posted by solle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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