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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고, 그리고 선명한 분홍색의 표지 색을 보고 포르노나 사랑에 관한 짧은 글일 것이라고 판단해버리는 사람이 많았다.

이 책은 독일에서 유학한 한병철의 '관계'에 대한 철학적 고찰을 담은 논문 형식의 글이다.


물론 사랑에 대해, 사랑으로 이루어지는 관계에서 발생하는 '에로스'라는 소재에 대해 얘기하고 있긴 하나,

나에게는 이 글이 사람 사이에서 맺어지는 그 어떤 관계에도 해당하는 것으로 느껴졌다.


타자의 소실. 그리고 에로스의 종말.


현대의 사람들은 '자아'가 너무나도 강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현대인들의 자아는 점점 더 강해지고 있으며 강한 자아가 칭송받고 또 미화되고 있다. 하지만 자기 자신에 대해 정말 정확하고 솔직하게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강화되기만 한 자아는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

한병철은 자기를 버리고 타자 안으로 온전히 들어가지 않는다면 절대로 누군가와 관계를 형성할 수 없다고 말한다. 누구든지 자기 자신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또 놓아버리고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만지고 느끼고 이해할 때. 그리하여 그 안에 들어가서 그 속에 있는 나를 다시 발견하게 될 때 우리는 온전한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오늘날 제시되고 있는 대부분의 '타자'들은 그저 상품으로서 겉모습만을 갖춘 돌덩어리에 불과하다. 그 안에는 아무것도 없고, 더욱 슬픈 것은 누구도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보려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이 세상에서 '에로스'는 존재할 곳이 없게 되어버렸다.


나 역시 자기 자신 안으로 자주 침잠하고 또 자주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그의 글을 읽으며 반성도 조금 하고, 내가 맺고 있는 여러 관계들에 대해 한 번씩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자기 자신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것에서 반드시 나아가, 이제는 나를 버리고, 타자에 대해 온전히 살펴볼 수 없다면 나에 대해 생각했던 시간과 노력 모두가 다 의미없고 소용 없는 것이 된다는 것(을 꼭 말해줬어야 하는데)을 여러 번 생각했다.

Posted by solle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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