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비단뱀은 아름다웠다. 그리고 알 수 없는 말을 늘어놓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그 생물은 힘을 주어 꽉, 끌어안을 줄 알았다. 함께 있다는 느낌. 사랑받고 사랑한다는 느낌을 주는 그것.
지금 이 세상을 걸어다니는 인간들이 생각하는 자기 자신에 대한 긍지같은 건 아무래도 좋았다. 어차피 그들 모두 같은 곳에서 왔으니까. 저 먼 아프리카에서, 허물을 벗기 전의 둔한 주머니에서 왔으니까.

아프리카에서 온 그녀도, 파리에서만 살아온 나도, 저 먼 밀림에서 온 비단뱀도 결국은 다 같은 것이었다. 굳이 특별한 표정과 눈빛을 짓고 어려운 단어를 섞어 말하지 않아도 진심은 전해진다, 는 건 단순한 믿음이나 순진한 자의 생각에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이것은 엄연한 사실이었고, 살아있는 심장, 뜨겁게 고동치는 심장을 가진 생물이라면 누구나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로맹가리는 '자연으로의 회귀'를 주장하는 '생태학적 결말'을 사랑했다고 하는데, 속삭임과 외침이 뒤바뀌고, 내장 속의 것과 껍데기가 뒤바뀌고, 그래도 변하지 않는 그 무엇은 바로 자연이고 생태적으로 존재하는 것일 테다. 한편, 이렇게 껍질부터 온통 뒤집어지지 않으면 내 모습을 드러내 보여줄 수가 없는 이 세상에 대한 비난, 절규일 수도 있을 테다.
왜 하필 비단뱀을 길렀는가 하면, 거대하면서도 아무 소리도 내지 않기 때문에. 주위의 다른 시선이나 움직임에 크게 동요하고 반응하지 않지만, 작은 움직임으로도 주위의 동요를 일으킬 수 있는 생명체이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11.13 적다 만.

Posted by sollea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