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듦"에 대한 고민은 진부하면 진부한 주제였지 전혀 새롭거나 갑작스럽지 않다. 인간이 나이를 먹는 일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수명 역시 갑작스럽게 증가한 것이 아니라 오래 전부터 꾸준히 늘어나왔다. 요즘의 <100세 쇼크>처럼 과거에 <30세 쇼크>, <50세 쇼크>가 있었대도 놀랍지 않다. 그런데 왜 이제와서 우리는 나이듦에 대해 이렇게까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걸까? 100살은 아무래도 정말 많은 나이니까? 바보같은 대답이다. 인간의 수명이 얼마나 늘어났는가와 무관하게 20살은 10살보다는 많은 나이, 30살은 20살보다는 많은 나이다. 노인은 어떤 나이로든 항상 존재해온 것이다.
단순하고 뻔하게, 현대 사회에가 발전함에 따라 추구할 수 있는 욕망의 크기와 종류가 점점 크고 다양해지고 있고, 살 수 있는 시간이 길어진 만큼 욕망의 갯수 또한 늘어나면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해진 것일 수 있겠다. 특히 현대 인류는 더 어린 나이에서부터 굳이 필요하지 않은 것이라도 욕망을 가지고 그것을 채워나가는 데 익숙해진 새로운 종이니 말이다.
이 책은 EBS에서 방영된 <100세 쇼크>를 정리한 기록이다. 제작팀은 다양한 환경에서 다양한 모습의 삶을 살아가는 '노인들'을 취재했다. 책에 정리된, 취재된 노인들의 다양한 모습보다 내가 주목하고 싶었던 것은 나이가 들었다는 것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대한, 태도의 문제였다. 제작팀은 다양한 노인의 삶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나이든 삶이 보다 젊었을 때의 삶과 다르다고 느끼지 않기를 바라-고 그러한 인식과 태도를 은근히 제안하-는 것 같았다.
아직까지의 사회는 '노인'의 삶을 젊었을 때 혹은 경제활동을 하고 있을 때와 완전히 단절된, 새롭게 시작된 삶처럼 여기는 듯하다. 하지만 한 사람의 삶이 어떻게 노트를 넘기는 것처럼 완전히 분리된 다른 장으로 나뉠 수 있을까. 나이가 들고 경제활동을 더 이상 하지 않는 것과 같은 조건과 환경의 변화는 다른 어떤 변화보다도 조절이 가능하며, 이것이 한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력은 정말 미미하다. 따라서 노인의 삶을 완전히 단절하여 생각하지 말고, 더 어린 나이였을 때의 삶이 계속해서 연장되고 있다고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한다.
100세 시대를 맞은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노인의 삶을 따로 떼어 바라보려 하지 않는 태도, 어느 나이부터 갑작스레 '노인의 삶'이라는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다. 실제로 노인 부양에 대한 사회적 압박감은 노인이 더 젊은 세대와는 뭔가 다르다는 인식으로부터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노인은 뭔가 다르다, 따라서 그들은 특별히 더 필요로 하는 무엇이 있으리라는 생각이 이같은 사회적 압박감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사실은 그런 '특별한 필요'라는 것은 사실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노인이 될 각 개인의 마음가짐이다. 노인들 역시 자신들이 더 젊었을 때 느꼈던 사회의 시선에 익숙해진 탓인지, 본인이 나이가 들면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고 쉽게 생각해버린다. 이같은 인식에서 '노후대비'와 같은 말도 나온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노인이 되었을 때 이렇게 해야지, 라고 본인 스스로의 삶까지 단절하여 생각하는 것은 차라리 우습기도 하다. 한 살씩 나이가 들어가더라도 젊었을 때 가졌던 삶의 취향을 계속해서 유지해 나가는 것이 더 자연스럽고 쉽지 않을까 생각한다.
'敖번 국도 >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버지의 유산 Patrimony] 필립 로스 Philip Roth (0) | 2019.01.25 |
---|---|
[박완서의 말] (0) | 2019.01.25 |
[그로칼랭] 로맹 가리 (0) | 2018.11.28 |
[모두 거짓말을 한다(everybody lies)] 세스 스티븐스 다비도위츠 (0) | 2018.09.26 |
[경애(敬愛)의 마음] 김금희 장편소설 / 창비 (0) | 2018.05.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