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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로스의 말투를 좋아한다. 어쩌면 정영목 번역가의 말투인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그것. 따뜻하면서도 빠르게 내뱉는 듯한 감정이 가득 담긴 그 문장들.


그가 그렇게나 나이많은 사람인 걸, 꽤 한참동안 몰랐다. 30대 후반에서 40대 중반 사이의 감정이 가득한 남자라는 느낌이 아주 강했다. 지난 해 그가 낭독을 하는 동영상을 받아봤다. 중얼거리는 듯한 말투에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상 속 책상 위의 책을 향해 몸을 구부린 그 남자에게서는 어떤 분위기가 강하게 풍겨오고 있었다.


그 영상을 친구에게 보내자, 이게 뭐냐고 물어봤다. 뭐라고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고, 그저 단상 위 책상에 책 위로 몸을 구부린 - 그래서 얼굴도 보이지 않는 - 나이든 남자가 웅얼거리기만 하는 영상이었으니까.

-그게 뭐가 중요해?

나는 생각했다. 중요한 건 그에게서 풍겨나오는 분위기 뿐이었다. 적어도 나에겐.


생각해보니 그랬다. 그의 감정이 응축되어 쏟아져나오는 듯한 말투에는, 어려서부터 억눌려왔던 감정들이 꾹꾹 눌러 묻혀져있는 것 같았다. 결국 그는 그 감정을 모두 표출해내지는 못했지만, 어떤 식으로든 그의 마음 속에 가득한 사랑을 다 보여주고 말았다. 어떤 식으로든. 그 모습에서 많이 위로받았다. 그래도 되는구나. 사랑이 많으니까 그럴 수 있는 거고, 그러는 거구나. 이렇게 생각해봤다. 처음으로. 그리고 책의 마지막 문장, 모두 기억해야한다는, 잊지 말아야한다는 그의 말은 여전히 내 귓가에 웅웅 울리는 외침으로 남았다.


너무나 평범하고, 너무나 인간적이고 너무나 사랑이 많이 느껴진다. 그래서 너무나 아프다.

아프다 못해 고통스럽다. 쓰러져 몸을 구부리고 꾸역꾸역 토하고 싶을 정도다.


이 책은 정리된 책이라기보다 한 사람이 절박한 마음으로, 감정의 홍수를 터뜨리지 못하고 꾸역꾸역 토하듯이 적어놓은 일기같았다. 그리고 그렇게 꾸역꾸역 눌러놓았던 감정을 발견하고 터뜨리는 것은 필립로스의 일하는(죽어가는)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던 듯하다. 짧은 순간순간을 둘러보고, 더 살고 싶어하는 그들의 모습을 통해 인간이 가장 힘들어지는 순간은 자기 자신을 자기가 어쩔 수 없어하는 때라는 걸 깨달았다.

자기 자신을 스스로 어쩌지 못할 때, 그럴 때 그가 스스로 어떻게든 해나가고 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게 도와주는 게 진정한 사랑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문득 든다.


Posted by solle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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