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김지영같은 소설일 줄 알았다. 보고서 혹은 논문같은 글이지만 하나도 딱딱하지 않았다. 어떻게 90년생에 대해 이렇게 속속들이 분석할 수 있었을까, 하며 놀랐고, 내가 그 사실에 놀란다는 데 우스웠다. 스스로 90년대생인 나 자신의 모습, 생각과 태도, 별것도 아닌 그것들을 분석하고 설명하는 글을 보면서 이렇게 놀랄 일인가 싶어서 그랬다.
또래가 없는 집단에 꽤 있어봤던 편이고, 누구보다 고집도 세고 눈치보지 않는 성격인 편인데도 최근 옮긴 직장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가장 힘든 것은 끝나지 않는 야근, 비효율적인 일의 진행, 또 거기에 나도 동참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보다도 내가 그러한 상황들에 분노하거나 잘못되었다고 느끼고 반발하고 싶어질 때, 이게 맞는건가? 라는 의문이 드는 일이었다. 나보다 더 윗세대 사람들의 분위기와 태도에 눌려서 내 모습이 정말 맞는 건지 확신이 점점 없어졌다. 그러지 않으려고 매 분, 매 초 스스로와 싸우고 다짐하고 굴복하지 않겠다고 소리내어 말하면서도 수적으로나 위계적으로나 그들에게 압도당하기란 너무나 쉬웠다. 나 스스로의 가치관, 줏대를 기준으로 행동하고 말하면서 당당한 태도를 가지려고 해도 주변에서 나를 용인하지 않으면 스스로에 대한 의문과 회의가 들기 시작한다. - 정말 내가 틀린 건 아닐까?
다름에서 오는 차이이며, 잘못되었다고 볼 일이 전혀 아니다. 서로에게 또 회사에 피해를 주지 않으면 되는 일이다. 내가 맡은 일에 충실하고, 책임을 다 하면 된다. 그 이상을 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이고 선택이며 그렇게 한다고 또는 하지 않는다고 해서 누군가가 그 사람을 다르게 볼 일이 전혀 아니다. 내가 틀리거나 잘못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 윗세대 사람들 - 지금 회사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중요한 의사 결정권을 가지고 잇는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이들을 용인하지 못한다.
무엇보다 이런 생각들이 또 부정적인 감정과 이어지는 것이 힘들었다. 내가 틀리거나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확신이 없으니 그들을 감정적, 인간적으로 비난하고 싶어지는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자신에 대한 확신은 없으면서 나를 포기하고 굴복하기도 어려워지자, 나와 다른 그들을 감정적, 인간적으로 비난하고 싶어지는 마음이 생기려 한 것이다. 상대방을 비난하는 건 내가 옳다는 인식을 갖기 쉬운 가장 비열하면서 쉬운 방법이다.
내가 이런 어려움을 느끼고 부모님에게 고민을 털어놓을 때 내 부모님은 '그 사람은 그런 식으로 일을 배워서 그래.'라고 말해주셨다. 그 말이 맞다. 그 사람이 배워온 방식이 있고, 내가 배워온 방식이 있으며 그 둘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단지 다를 뿐, 서로에게 피해가 되지 않으면 상관없다. 이렇게 쉽고 간단한 것을 하지 못하는 까닭은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을 본 적도 배운 적도 없기 때문이라는 거다(사실 그렇기 때문에, 그렇다는 사실을 당사자가 깨닫고 다른 사람에게 물리적으로든 심리적으로든 피해를 주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어쩌면 좋을까? 중요한 건 내가 맞다, 는 것이 아니다. 단지 내가 틀리거나 잘못한 것이 아니라는 것뿐이다. 상대방이 나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인정해주기를 바라지 않는다. 나 자신이 틀리지 않았고, 잘못이 없다는 확신을 잃지 말고 나와 다른 그들을 감정적으로 또 인간적인 면에서 부정적으로 대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야겠고 다짐했다. 그들이 아니라 나 자신이 더 나은 사람으로 남기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일상에서 마주치는 90년대생을 볼 때처럼 신기하다, 희한하다, 특이하다며 바라보고 고쳐주려고 하지 말고, 읽고 이해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냥 있는 그대로-그게 무엇이든 누구이든- 내버려둘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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