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것은 죄다.
이 책은 모르는 것이 잘못이라는 걸 깨닫게 해주는 책이다. 사실 페미니즘 외의 여러 분야에 대해서도 저자가 보여주고 있는 태도는 적용될 수 있다. 그렇기에 이 책은 더욱 널리 읽혀져야 한다.
일상 속에서 누구나 해봤을 법한 대화를 되짚어보며 여성주의라는 이름이 붙은 태도들이 얼마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인지, 또 그 동안 이 세상과 사회가 얼마나 기울어진 시각을 가져왔는지를 정말 잘 느낄 수 있게 도와준다. 저자는 여성주의를 소개하거나 설명하느라 애쓰지 말라고 말해준다. 페미니즘을 친절히 설명하지 말라는 게 이 책의 골자다. 무엇보다 그럴 필요도 없고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확신을 갖게 해준다.
몇 년 전 페미니즘 관련 서적을 읽는 건 일종의 붐, 유행이기까지 했다. 페미니스틱한 자세와 시각은 '이제는 좀 알아두어야 할' 어떤 지식이나 태도처럼 여겨졌다. 설명의 방식으로 다뤄질 때 페미니즘은 하나의 사회적 현상이나 환경 변화처럼 느껴졌다. 이런 태도를 가지고 있는 책을 읽을 때는 그 태도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설명하는 그들도 받아들이는 나도 여성주의적 태도를 원래 그 곳에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마치 새롭게 나타난 것처럼, 하나의 새로운 개념, 지식인 것처럼 대했다.
이 책을 읽고 나서야 비로소 페미니즘을 하나의 지식이나 개념으로써 받아들이고 다뤄도 되는 걸까?라고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반성했다. 얼마나 이 세상이 속속들이 여성에게 등을 돌리고 있었으면, 이런 것이 하나의 새로운 개념처럼 나타났던 걸까, 이제서야 생각했다. 여성주의적 태도는 없었다가 나타난 게 아니라 원래 그 곳에 존재하고 있었으나 그에 반하는 집단에 의해 묻히고 가려져왔을 뿐이라는 확신을 준 내가 본 최초이고 유일한(어쩌면 나에게 첫번째일지도 모르겠고, 그렇다면 좀 기쁘겠다) 책이다.
누군가 이 책을 읽고 책의 태도와 말투가 과격하다거나 강요한다거나 주장한다고 느낀다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그 사람은 이 책에서 말하는 "무지하게 살 수 있었던 이가 느껴야 할 죄책감"을 아직도 느끼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말 그대로다. '무지하게 살 수 있었'고, 여전히 '무지하게 살 수 있'다. 자신이 어떤 삶을 살 것인지는 스스로가 선택할 수 있고, 모두가 그래야 한다. 하지만 이 책을 집었거나 혹은 이 책에서 하는 것과 같은 얘기를 듣겠다고 나섰다면, 그는 먼저 죄책감을 느껴야만 한다. 그러한 죄책감을 느끼고 싶지 않다면 대화-이 책과의 대화이든 그 누군가와의 대화이든-를 그만 중지하길 바란다. 본인이 알고 있던 사실(나는 이것을 '올바른 사실'또는 '진실'이라고까지 말하고 싶다)과 다른 이야기, 타인이 알고 있는 것에 대해 들을 자세가 되어있지 않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또, 자신이 그러고 싶지 않다면 타인의 그럴 수 있는 자유 역시 침해해선 안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모른다는 것'은 잘못이기 때문에 당당하게 나서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것이 이 책을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하고, 깨달아야 하는, 너무도 당연하지만 잊어버리고 있었(거나 최악의 경우 정말로 모르고 있)던 매우 중요한 사실이다.
독후감을 시작하며,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태도는 비단 페미니즘이 아닌 어느 곳에서든 적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책은 페미니즘에 관한 책이며, 여기서 보여지는, 우리가 배우고 잊지 말아야 할 태도는 그 어디보다 여성주의를 위해서 쓰여야 한다. 페미니즘은 여성을 지지한다. 남성이 아닌 것을 지지한다기보다, 남성중심적으로 돌아가고 있던 세상에서 정상으로 여겨지던 비뚤어진 시각을 올바로 놓으려는 것이 페미니즘이다. 그리고 주목할만한 정의가 여기 있다. "페미니즘은 생물학적 성별에 관계없이 들리지 않았던 목소리에 주목하며, 그 목소리를 지지하는 이라면 누구든 지지합니다. 그렇지만 한 가지, 남성중심주의에 기여하는 목소리마저 포옹할 수야 없습니다.남성중심주의에서 배제된 이를 포용하는 것이 페미니즘이므로, 페미니즘이 차별주의자의 목소리를 수용한다면 자기모순이 되기 때문입니다. 남성도 페미니즘의 편에 얼마든지 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남성이 끼어야만 진정한 페미니즘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남성은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됩니다. 반드시 남성이 중심이 아니어도 세상이 돌아갈 수 있음을 보이는 게 바로 페미니즘입니다."
헷갈리지 말자. 당당해야 할 자 누구이고, 잘못한 자 누구인지를. 절대 잊지 말자. 겸손한 것과 잘못한 것은 다르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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