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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또한 뭔가를 잃어버렸다. (…)나는 무엇을 잃어버렸는조차 알지 못한 채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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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서도 현실에서도 나는 내 시점을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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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살인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누군가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도 거기에 달려오는 상실이나 슬픔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다.
나와 내 주위의 모든 개인이 가지고 있는 '기억 상실'에 대한 얘기다. 모든 사람은 지나간 시절에 대한 기억을 잊고 만다. 그게 행복한 일이었든 무섭고 끔찍한 일이었든 결국엔 잊고 만다. 그 누가 모든 일을 정확하고 세세하게 다 기억할 수 있을까마는, 그 잃어버림으로 인해 인간의 마음에는 상처가 쌓인다.
한 친구는 내게 '쓴뿌리'에 대해 말했다. 어린 시절 저도 모르게 받았던 마음의 상처가 깊숙한 곳에 쓴뿌리로 자리 잡아서 그 비슷한 자극에 대해 좀 더 예민하게 반응하고 쉽게 다시 상처입게 된다고. 그게 캐기 힘든 '쓴뿌리'라는 거라고 했다.
이 소설은 어쩌면 쓴뿌리에 대한 얘기다. 이 가제본 안에서 살인사건의 주인공인 해언은 사실상 등장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그 사건을 파헤치는 누군가가 나오는 것도 아니다. 그 이전과 그 이후를 살아가며, 자신 안의 무언가-그게 기억이든 물리적인 자기 자신의 모습이든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등장할 뿐이다.

상희의 시에 나오는 제임스 조이스를 좋아하는 베티번 씨는 #제임스조이스 의 #젊은예술가의초상 에 나오는 인물이라고 한다. 이 소설에 대한 해설을 찾아보면 정체성을 잃은 개인의 방랑을 그렸다는 말이 많이 보인다. 사회적인 문제, 또는 그 비슷한 다른 거창한 말을 가져오지 않아도 모두가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산다.
어떤 이는 자신이 무언가를 잃어버렸다는 걸 인지하지도 못하고, 어떤 이는 잃어버린 뒤 이제 남은 것 중 어떤 것을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지 고민한다.
이 소설에 나오는 이들처럼 살인사건이라는 크고 끔찍한 일을 겪지 않았더라도 사실 우리 모두는 매 순간 무언가를 잃어버리며 살아간다.

그래서 권여정 작가가 하고 싶었던 말은 뭘까. 그리고 나에게서 '그래서' 다음에 나올 말은 무엇일까. 이 이야기를 끝까지 읽고 난 뒤 어떤 말을 하게 될지 너무 궁금하다.

Posted by solle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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