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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보고 나서 작가라는 삶은 어떤 걸까. 라는 생각을 했다. 문인이라는 거, 예술가라고 글을 쓰는 사람들. 직업으로써 글을 쓰는 사람들의 삶은 어떤 걸까.

내가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읽었던가.

아마 읽지 않았던 것 같다. 김연수의 <소설가의 일>을 읽었을 뿐.

마크 마리가 아니 에르노를 대하고, 그녀에 대해, 또 그녀에게 말하는 태도를 보면 '작가'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 궁금해졌다. 작가라는 삶은 어떤 걸까. 그들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삶을 사는 걸까.

 

이들의 이야기, 관계에서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이 연인이 되었다는 사실에서 연인이 된 한 쌍보다 그 개인이 중시되고 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었다. 더군다나 이 책은 두 사람이 관계를 한 뒤 흩어진 옷자락과 방의 모습을 찍은 사진에 대해 각자 쓴 글을 모은 것이니까, 그러니까 더 그들이 한 쌍으로서 존재해야 할 것 같지만, 그들의 관계보다 두 명의 개인적인 삶과 생각이 존재할 뿐이어서 좋았다. 두 사람 각자와 그 순간을 세 개의 독립된 생명처럼 느낄 수 있었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에 함께 존재했던 두 사람이 한 장의 같은 사진을 보고 하는 얘기는 다르다. 전혀 다른 듯하지만 또 다시 읽어보면 같은 얘기를 하고 있는 것도 같다. 아니 에르노는 흩어진 옷가지 하나하나를 먼저 살피는 것 같다. 그녀는 사물 하나하나, 그리고 삶의 순간에 일어나는 작은 이벤트 하나하나를 살아있는 별개의 생물체로 인식하는 것만 같다. 지금 살고 있는 순간이 너무 소중하고 유약하다고 느껴서 그런 걸까. 하지만 그저 아니 에르노라는 사람의 성격, 태도라고만 받아들였다. 그녀의 신체적인 상황에 대해서 색안경을 끼지 않으려고, 아니 오히려 그녀에 대해 반대되는 색안경을 끼고 글을 읽어보려고 애쓰고 있던 것도 같다.

아니 에르노의 단어는 하나하나가 살아있는 생물체였다. 그녀는 문장 속의 단어와 음절 하나 하나가 의미있기를, 그것을 배치하는 방식에 따라 큰 변화가 일어나기를 바라고 또 그렇다고 믿고 있는 것 같았다.

텍스트의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 같은 아니 에르노와 달리 마크 마리는 사진의 세상에서 살고 있는 사람 같다. 사진은 하나의 눈길을 끄는 강렬한 디테일을 가지고 있다. 넓은 시야에 수많은 오브제를 담고 있지만, 그 중 눈길을 끄는 단 하나의 디테일이 존재한다.

아니 에르노와 함께 한 일 년 정도의 시간을 지나면서 그는 내가 어디까지 다가가야하는가, 너무 지나치게 고민하지 않았다. 매 순간 그저 흘러가는대로 움직였고, 내가 그럴 줄 몰랐다. 우리 관계가 이렇게까지 될 줄 몰랐다, 고 아무렇지 않게 설명하는 듯하다.. 하지만 이런 태도가 자신이 특별히 아니 에르노의 보호자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 아니고 그녀와의 관계가 아주 일시적이고 단순한 스쳐가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어 더욱 더 마음에 들었다.

그에게서 지나가는 시간, 과거에 속하는 사건들은 단순히 추억하고 기억할 것으로 남는 것 같지 않았다. 머리를 쓰는 게 아니라 온 몸으로 자연스럽게 선택하고 움직이는 순간들이고, 그 순간을 반드시 거쳐 지금의 내 손과 발, 팔, 다리가 존재하는 것 같았다. 그가 사진을 보고 묘사한 글을 읽으면 시간 그 자체와 하나가 되어 움직이는 사람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의미를 잃어버리고 만다. 이 말이 사진에 대한, 그리고 서로에 대한 그들의 태도를 가장 잘 보여준다. 아무런 의미 없고 질서 없어보이는 흩어진 옷가지와 마룻바닥의 사진을 찍는 그들의 행위는, 어떤 아름다움을 창조해기 위함도 아닌, 특별한 의미를 공유하기 위함도 아니다. 그들이 남긴 사진은 지나고 나면 곧 아무 의미도 없어질 순간들을 오랜 시간이 지났을 때 그 존재를 잊어서 사라지게 만들지 않을, 존재의 흔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그것도 두 사람에게가 아닌, 각자에게다. 두 사람이 '공유'하는 것이 아닌 두 사람 각자의 시간이 존재할 뿐이다. 그 전에도 이후에도 그렇듯이 말이다.

물론 어떤 순간에는 서로에게 가장 의미있고 싶어서 마음이 아프고 그 사실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가장 소중하지만, 그것 역시 지나갈 한 순간이며 딱지로 남겨질 일이다.

무용해보였고, 실제로도 무용하게 남겨질 그 사진들의 용도는 각자에게 삶이 존재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그게 전부다. 특별한 쓸모, 특별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존재하는 것 자체가 그 쓰임인 것. 그들의 사진은 그런 용도이며, 그렇게만 남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Posted by solle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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