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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에 있는 좋은날의 책방에서 샀다. 민음사 쏜살문고. 대형 출판사 책 사고 싶지 않다고 생각 많이 하는데, 쏜살문고는 진짜 너무 유혹적이다.

이 때 여성작가 책이라고 해서, 같이 전시되어 있었던 감경애의 소금도 샀다. 소금은 고어로 쓰인 문장이 많은 것 같아서 표현을 살펴보고 싶은 마음에 샀다.

아니 에르노의 책은 한 권, 한 권 되게 가슴을 찢는다. 그래서 사기가 되게 두려운데 꼭 직접 내 두 눈으로 읽고 싶어지는 글이다. 띠지에 '칼같은 글쓰기'라고 하는데, 그 '칼 같다'는 말이 사람마다 다르게 느껴지겠지만, 나는 정말 아프고 뜨겁고 쓰라린 상처를 만드는 느낌이다.

거의 스무살밖에 안 된 어린 나이에 임신을 하게 되었고, 그 임신을 중절시키기 위해서 사람을 찾아다니고, 또 결국 유산을 하였지만, 출혈과다가 바로 나타나는 바람에 가난한 이를 위한 병원으로 실려가 소파수술을 받은 이야기다.

그녀의 발걸음 하나하나가 너무 무겁고, 임신중절이라는 과정을 정말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어서 끔찍하고 친절할 정도로 자세하다.

6,70년대의 프랑스. 보수적인 가톨릭 가정과 마을에서 자라난 그녀가 결국 임심중절을 마무리해내기까지 얼마나 어둡고 조용한 시공간을 거쳐와야 했는지, 그녀의 짤막한 문장 하나 하나에 땀방울처럼 다 묻어있다.

그녀가 느꼈던 감정, 그리고 사실로서의 경험들을 아주 단순하게 적어내려갔을 뿐인데, 그 덤덤한 표정 안에서 터질듯한 심장 소리와 코를 찌르는 두려움의 냄새가 배어나온다.

왜 여성들은 보호받아야 하는가. 또 어떤 식으로 누구에게서 보호받아야 하며, 그 보호를 요청하는 방식은 어떠해야 하는가.

너무도 기본적인, 또 당연한 인간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권리인데 왜 그것들은 없는 취금 당해야 하는가. 왜 심지어 비난받기까지 해야 하는가.

초반에 나왔던 그 당시의 임신중절 시술사에 대한 처벌은 수신지 작가가 최근 인스타에 연재하던 GONE을 생각나게도 했다.

그 생생한 장면들을 보며 정말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는지 어떻게 된 것인지 정확하게 설명을 듣고 싶었지만, 엄마에게 묻는 건 괜한 관심을 불러일으킬 것 같다는 생각에 - 여전히 너무나 가톨릭이고 너무나 보수적이고 걱정스런- 말을 꺼내지 못했고,

의사인 친구에게 책이 재밌다며 얘기했을 땐 우울하지 않은 책도 추천해달라고 했다.

이것은 힘겹고 고통스럽지만 승리의 기록임에도 불구하고. 안타까움을 느꼈다.

더 많은 관심과 존중을. 이 작은 책은 우리에게 그렇게 말한다.

그 누구를 비난하는 것도 아니고, 스스로를 칭찬받을 대상으로 내놓는 것도 아니다. 그저 이 모든 사실을 알려주고자 할 뿐이며, 이같은 '사실'들에 더 관심갖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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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olle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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