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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로에 있는 공간휘도에서.

이런 공간이? 정말 덩그러니 있는 공간에 소파가 있고, 테이블이 있고, 너무 무심하면서 따뜻했다. 아늑한 창고같았다.

연습장에 아무렇게나 두꺼운 펜으로 쓴 세 개의 차 종류는 흔한 게 아니어서 오 맛있겠다 생각이 들었는데 오설록 티백이어서 놀랐다. 그래도 따숩고 좋았다. 시간 제한 없이 오천원에 차 한잔, 따뜻한 물도 여러 번 더 주실 수 있다고 했으니 정말 저렴하지 않나. 문 닫는 시간은 9시지만, 추가금을 내고 대관을 하면 얼마든지 더 이용할 수도 있다고 했다.

을지로 창고로 쓰던 공간을 왠지 이렇게 카페아닌 카페로 쓰시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무렇게나 떠들어도 되고 음식도 (추가금을 내면) 먹을 수 있는 편하고 좋은 공간이었다 - 사람이 많이 올까? 애초에 두세팀밖에 못 이용하게 구성되어있긴 했지만, 정말 두 팀이 수용할 수 있는 최대치일 것 같았다.


Y

나는 메트로폴리탄의 경비원입니다. (패트릭 브링글리, 웅진지식하우스, 2023 지금 지역 도서관에서 전부 다 대출 및 예약중...)

소개)

형의 암 진단과 함께 삶의 지향점과 모양이 완전히 바뀌어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경비원으로 일하며 미술관에 있는 작품들과 함께 일상의 이야기를 덤덤하게 전한다.

<숨결이 바람 될 때>와 비슷한 느낌도 들고,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와 비슷한 류의 에세이같다. 아주 자신의 일상적이고 개인적인 이야기만 풀어놓은 수필도 아니면서, 객관적인 사실만을 보여주는 글도 아닌 그 중간 혹은 그 둘을 섞어서 쓰는 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작품에 대한 이야기에 지나치게 집중하고 정보를 얻으려고 하는 마음을 놓고 가볍게 읽어나가면 금세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점에서 오히려 읽기 쉽기만한 책은 아니다.(밀리의 서재 분포에서 "마니아"!)

일과 삶에서 생각이 많은 요즘, 저자의 삶과 태도를 보며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이 많아진다.

 

O

기록하기로 했습니다. (김신지, 휴머니스트, 2021 와 2021년에 나온거였네?)

소개)

우도의 밤수지맨드라미서점에 갔다가 구입해서 읽게 된(읽기 위해 구입한?) 책.

이 책을 읽고 과거에 썼던 읽기도 꺼내보면서, 기록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닫게 됐다. 부모님/조부모님 인터뷰는 한 번 해볼 생각이다.

김신지 작가를 좋아하는 Y에게 선물 💕

도둑맞은 집중력 (요한 하리, 어크로스, 2023)

소개)

현대인들이 집중력을 어쩌다, 얼만큼 잃게 되었는지, 이것이 회복 불가능한지 아니면 가역적인 상태인 것인지 저자가 여러 전문가들과의 인터뷰, 또 그리고 직접 체험을 통한 실험으로 집중력을 다시 회복할 수 있는지 테스트까지 해봤다.

스스로와 주변의 일상을 돌아봐도얼마나 집중력이 떨어지고 휴대폰과 짧은 컨텐츠에 익숙해졌는지

대화하다 언급된 책: <도파미네이션>

 

👉🏼 어쩌면 이런 짧은 컨텐츠, 미디어에만 집중하고 이해하는 것이 새로운 인간의 집중력은 아닐까? 라고 생각했지만, 오프라인/온라인 아날로그/디지털을 구분하는 것보다 얼마나 긴 시간 동안 한 가지에 몰두할 수 있느냐, 라는 것이 집중력을 말하는 거라는 사실을 잊었던 거 같다. 오히려 영상과 미디어에 쉽게 집중하지 못하는 나 스스로에게 밀레니얼 또는 MZ식 디지털 미디어 리터러시가 부족한 건 아닌가, 라고 평소 자주 생각했기 때문에 그랬던 듯하다.

'도파민 중독' 이라는 말이 많이 쓰이고 있는 듯하다. 상당히 디지털과 동떨어져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쉬는 동안 손에서 휴대폰을 놓지 못하는 시간은 점점 길어지고 있던 게 사실이다. 아니라고 하면서도 사실은 나도 도파민까지는 아니어도, 휴대폰 중독이 맞는 것 같다. 자꾸만 깜빡하고 바로바로 잊어버리는 것도 그 탓인듯하다.

서담서담에서 소개됐던 책인데, 그땐 별로 관심 없이 들었으나 모임에서 얘기를 듣고 나니 오랜만에 완결성있는, 잘 구성된 책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읽어보고 싶어졌다.

 

S

와인이 이어준 우리 (레이첼 시그너, 엔프레스, 2023)

👉🏼 음... 다음날 돌아오는 지하철에서는 무엇했지 계속 핸드폰만 보느라고 책을 또 더 읽지 않았고, 집에 와서도 주말에 한두장 정도밖에 읽지 않았다. 하지만 계속, 그리고 점점 책장이 넘어가면서 느끼는 생각은 이 여자는 참 이기적이고, 전형적인 white american girl 느낌이 너무 많이 난다는 것. 와이너리와 내추럴 와인 패밀리의 역사도 간단하게밖에 짚지 않고, 이 책은 오로지 자신의 사랑과 일에 대한 성공담 정도에 그치려나 보다.

그렇다해도 그 살짝살짝 비치는 이야기들만으로 내추럴 와인과 그것을 만드는 가족들의 이야기에 더욱 더 관심과 존경이 생기고는 있다.

아무리 냉장고에 넣어둔다고 해도, 집에서 병술을 혼자 마시는 것은 무리가 되는 것이 틀림없다. 사장님이 했던 말, "와인은 사치품이잖아요." 그게 딱 맞는 것 같다.

집 근처에서 시음회를 하고 여러가지 와인을 마셔보고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는 자리가 있다는 게 부러웠다.

일단 끝까지 열심히(그리고 얼른) 읽어보자.


좋은 친구들과 좋은 시간. 짧은 시간동안 얘기를 해도 깊이가 있고, 다들 책을 좋아하고 많이 읽는 사람이라서 다른 책 이야기도 자연스레 섞여나오는 게 정말 좋다. 취향도 비슷하면서 은근히 다른 지점도 있고 해서 생각이 정말 단단하게 확장되는 시간이다. 같이 본격적으로 책 얘기를 한 건 처음인데, 진짜 정기적으로 이렇게 책모임을 하면 좋겠다. ㅎㅎ 실제로 얘기한 시간 30여분밖에 안되는 것 같은데 기억이 너무 선명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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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만의 방을 갖기 위한 분투나 어려움, 이 아닌 자기만의 방을 가진 기쁨과 행복, 그리고 그 안에서 나에게 보이는 것들이 따뜻하다. 덕분에 나도 나만의 방을 한 번 더 둘러보고 웃음짓게 된다.


함께 실린 작가들의 '자기만의 방' 펜그림은 글을 읽기 전 그의 방에 함께 들어가있는 듯한 기분도 느끼게 한다.
누군가는 작은 방, 누군가는 30평대 아파트. 또 누군가는 반지하, 누군가는 고층의 집이며, 그 방은 도심에 있기도, 시골에 있기도, 한국에 있기도 다른 나라에 있기도 하다.
하지만 모두의 방에 들어갔을 때 동일하게 느껴지는 한 가지 공통된 감정은 "따뜻하고 편안하다", 는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모두가 자신의 방에서 이같은 느낌을 다시 발견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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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빌려왔는데 왠지 양장된 표지에서부터 달콤한 빵 냄새가 나는 것 같아 이상했다. 정말로 책에 특수한 처리를 한 건 아닌가 싶어 책에 코를 대고 몇 번 킁킁거렸다. 마법처럼 이상한 책이었다.

마법이 깃든 과자와 빵들이 다 누군가를 증오하는 마음을 발산하는 데 이용된다니 사실 어떻게 보면 무서운 이야기였다. 주인공이 겪는 일들 역시 너무 폭력적이고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해도 등장인물들이 순정만화에 나오는 그림들로밖에 떠올려지지 않았다. 알록달록한 빵과 과자들, 그리고 어떻게 봐도 나쁜 사람같지 않은 인물들과 맛있는 냄새가 가득한 책이어서 자꾸만 이상했다. 위저드 베이커리의 빵과 과자를 사가는 사람들, 그것을 어떻게 이용하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었던 것 같다. 충분히 자극적이라고 느껴질만한 이야기인데도 그런 디테일이 마음에 오래 남지 않았던 것이 위저드 베이커리가 다시 또 문을 열고 장사를 해나가는 비결이 아닐까 한다. 이야기의 자극적인 요소들보다 중요한, 이 이상하고 재밌는 이야기를 관통하는 중요한 메시지. 얼마나 끔찍하거나 평범한지와 상관없이 사람은 절대 변하지 않으며, 그래서 운명을 변하지 않는 것이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요한 건 내가 어떤 선택을 하는가, 이 선택이 당첨이냐 꽝이냐가 아니라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항상 내가 자신에게 책임을 지겠다는 마음가짐이라는 것 같다. 점장이 증오를 실현하는 온갖 빵과 과자를 파는 것도 세계에 대한 책임감 떄문이다. 위저드 베이커리의 빵과 과자를 사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도 모두 그 책임감이다. 지금 이 순간의 모습은 조금씩 다 달라질 수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내 운명은 내 선택과 책임으로 만들어지는 것이고 내가 변하지 않는 이상 크게 달라질 일은 없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책임은 내 능력을 넘어서더라도 의협심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하고 선한 마음이라는 걸 이 이야기는 보여주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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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으로서의 존엄을 갖춘다는 게 어떤 의미일까. 왠지 가난해서 옷이 해지고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는데 아무렇지 않은 척 방에 앉아 책을 읽는 조선시대 선비가 떠오른다. 또는 전장에서 처참하게 지고 있는데 끝까지 용기를 잃지 않고 선두에서 칼을 휘두르는 장수라던지. 레이디 맥도날드의 모습은 이들과 좀 비슷하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

<궁금한 이야기 Y>에 실제로 소개되었던 맥도날드 할머니의 실체는 아마 아무도 알 수 없을 것이다. 그 사람이 특이해서라기보다 사실 이 세상 누구에 대해서라도 실체를 알아내는 건 불가능한 일이니까.

소설에서 레이디 맥도날드는 현실의 맥도날드 할머니보다 조금 더 미화되고 조금 더 점잖게 그려졌음에 분명하다. 그럼에도 그 안을 들여다보려고 했던 한은형 작가의 마음에 약간은 공감이 됐다. 우리 모두 언젠가 그런 모습이 될 수 있다는 사실. 그렇게 사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그 누구도 말할 수 없는 것인데, 함부로 많은 이가 잘못되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왜 그녀가 '그렇게' 되었는가에 대해 원인을 찾으려고 했다. 얼마나 거만한 태도인가.

그럼에도 평소 우리는 너무 쉽게 주위 사람들을 재단한다. 평가하고, 비교한다. 나 자신에게까지 그렇게 한다.

존엄을 갖춘다는 것, 품위를 지킨다는 것의 의미가 대체 무엇일까. 고급호텔 사우나에 가서 세신을 받고 목욕을 하고, 고급 재료로 만든 코스 요리를 먹고, 모범 택시를 타고 다니는 것? 유명 브랜드의 옷을 입고 외국어를 섞어서 사용하는 것? 이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레벨'에 도달하기 위해 경제적으로 부유해지는 것?

이런 것들이 없다면 존엄하지 않고 품위가 없는 걸까? 몇천원 짜리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고, 하루에 세 끼를 다 챙겨먹지도 않으며, 하루 종일 몸을 쓰며 옷에 더러움이 묻고, 좁고 축축한 방에서 겨우 잠을 자는 그런 삶은 존엄하지도 품위있지도 않은 걸까?

사실 그 어떤 형태의 삶을 살더라도 사람은 존재 자체로 존엄해야 한다. 존엄이라는 것은 잃어버릴 수 없는 거라고 생각한다. 품위란 것은 인간인 만들어낸 하나의 사치품에 지나지 않는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인간은 자신이 만들어낸 새장에 자기를 자꾸만 가둔다. 그게 재미있는 놀이라도 되는 것 같다.

<궁금한 이야기 Y>에서 방영된 맥도날드 할머니의 모습과 방송에 나온 대화가 소설에도 많이 사용이 되었지만, 그녀의 실체와 소설 속 레이디 맥도날드의 실체는 어쩌면 전혀 다르다. 그리고 이 소설 속 레이디 맥도날드는 참 맑고 투명하다. 자신의 삶에서 지키고자 하는 것이 자기 자신밖에는 없다. 오로지 자기를 잃지 않기 위한 방법으로 그녀는 살아갔을 뿐이다. 죽지 않으니 살아있었고, 살아있는 동안 그렇게 자기를 지키다가 죽는 순간에까지도 그 모습으로 멈췄다.

작가가 레이디 맥도날드의 모습을 통해 어떤 더 깊은 얘기를 하고 싶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책의 뒤편 작가의 말에서 했듯이 언젠가 우리도 그녀의 모습처럼 될지 모른다는 마음은 어떤 느낌이었을지 조금 알 것 같았다. 존엄이나 품위같은 건 사실 정의내릴 수 있는 어떤 형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단지 그게 어떤 모습이든 우리는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다는 것, 그걸 잊으면 안 되겠다는 그런 느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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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와 영주>에서 나온 말처럼 이 책에 실린 이야기 모두가 고생대의 화석처럼 어딘가에 늘 존재하고 있는 무엇에 대해 얘기하는 것 같았다. 단편집을 읽을 때면 꼭 거기 모인 이야기들을 한 번에 관통하는 주제가 있을 것만 같다. 그렇지 않다는 생각을 의도적으로 많이 하며 읽으려고 하는데 이번에도 하나하나를 기억하기보다는 최은영 작가가 하려는 이야기가 항상 무엇인지에 대해 떠올리게 됐다. 작년 이맘때쯤 읽었던 장편 <밝은 밤>까지 떠올랐다.

최은영 작가의 이야기에는 여성과 조손관계가 항상 등장하는 것 같다. 맨 뒤에 있었던 심사평에서도 그런 얘기가 계속 나왔지만, 소재는 아주 새롭지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먹먹하고 진하게 감동적이다. 사실 <밝은 밤>을 읽을 때는 꼭 이렇게 여성서사에서 슬픔에 잠겨 눈물 흘리게 해야만 하는가, 라는 생각이 들어 질려버리기도 했다. 엉엉 울고 난 뒤였다. 그런데 이렇게 얘기를 지어낼 수 있는 것이 최은영 작가밖에 없다는 생각을 이번에 했다. 그가 그릴 수 있는, 여성만이 드러낼 수 있는 어떤 감정이 존재한다는 걸 느꼈다.

손에 쉽사리 닿거나 눈에 보이지 않지만 언제나 마음 안에 존재하고 있는 어떤 감정을 우리는 품고 살아간다는 걸, 그리고 그 감정을 굳이 드러내려고 애쓸 필요도 없지만, 없애버리거나 잊으려고 할 필요 또한 없다는 걸 생각했다. 마음 속에 그런 아픈 조각 하나 없는 사람은 절대 존재하지 않으리라는 걸 확신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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