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오늘도 효율이 떨어지는 나는 이리저리 몸만 뒤집고 있고.
여보란듯이 sbs스페셜에서는 "저녁이 있는 삶 따윈 없다"고 소리치고 있다.
"요즘 젊은 것들, 사표"

왜 이러는 걸까요? 왜 우리는 이렇게 살아야 하나요?
단순히 누가 시켜서 싫다, 가 아니라 그 시키는 사람도 싫은 일을 왜 하나요?
16.9.11 23:54

아... 웬만하면 볼 것. 가능하면 부모님과 보고 진지하게 얘기해볼 것. 누군가의 눈에 난 아직 어리고 또 뭐가 중요한지 모르는 사람일테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게 아니라 좋은 것만 먼저 찾는 건 크나큰 잘못이라 외치고 싶다. 좋아하는 게 가장 좋은 것이라는 걸 먼저 깨닫고 이해하면 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절실하게 찾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https://brunch.co.kr/@jade/397?fbclid=IwAR0CDQ65tT-dTQ2NEm6ek37SMUXkik06aEhsI_iNCtiO7ajz35ZT6vVx8Y0

요즘 젊은 것들의 사표

SBS 스페셜에 방송된 '은밀하게 과감하게 요즘 젊은 것들의 사표'가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화제가 되었다. 간절하게 원해서 들어간 직장 생활이 생각한 것과 다르게 불합리하고, 배울 것 없는 상

brunch.co.kr

16.9.21 21:36

728x90
반응형

'舊번 국도 > Facebook archiv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2016-2  (0) 2022.08.03
용기 있는 삶  (0) 2022.08.03
나를 소개하는 말이 내가 앞으로 하고 싶은 것이 되면 좋겠어  (0) 2022.08.03
마이앤트메리 4시20분  (0) 2022.08.03
가지마, 가을  (0) 2022.08.03
Posted by solleap
,
728x90
반응형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라는 책을 읽었었다. 대전을 떠나오기 전에 읽었던 책인데, 갑자기 오늘 이 책 생각이 났다.
그 책을 읽는 내내 하루키의 말투가 마음에 안 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느라 쓰쿠루에게는 관심을 많이 가지지 못했단 생각이 든 거다. 소설의 주인공보다 저자가 관심을 더 많이 받는다면 그 소설의 주인공은 불행할 것이다. 주인공이 불행하다면 소설 역시 불행할 것이다. 그렇다면 불행한 소설을 쓰는 소설가는? 그 역시도 불행할까?
왜 하루키는 '반짝이는' 쓰쿠루를 색채없는 사람으로 그려버렸을까. 어쩌면 그는 이미 불행했기에, 자신의 행복을 구하기 위한 제물같은 게 필요했던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쓰쿠루란 사람은 참 반짝이는 사람이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뭔지 아는 이는 대체로 반짝인다. 그런데 하루키는 그를 '색채가 없는' 이라고 말해버렸다. 그 덕분에 나는 쓰쿠루에 대해 읽는 내내 그에게서 나오는 반짝임을 배경에서 나오는 별빛이나 가로등 불빛인 것처럼 여겼던 모양이다.
반짝임은 눈에 잘 띈다. 원래 밝고 환한 어떤 색 보다도 반짝임은 눈에 잘 띈다. 그것은 어둠 속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숨기기도 어렵다. 그런데 반짝이는 존재는 스스로의 반짝임을 감지하기가 어렵다. 게다가 반짝임은 온통 깜깜한 주위 탓에 스러져버리기도 쉽다.

색이 없다는 것. 그게 진짜 무슨 의미일지 골똘히 생각해보게 된다.

+ ???
16.9.13 23:42

728x90
반응형
Posted by solleap
,
728x90
반응형

내가 아는 사회는 여기뿐이니까.
내가 아는 것에 대해서만 말하자면 그렇다. 하지만 내가 아직 알지 못하는 수많은 종류의 사회에서도 결국 다 마찬가지 아닐까?(너무 당연하게도?!)

하이타니 겐지로의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를 읽었다.
그리고 나는 직접 겪어보지 않았지만, 상대를 이해하지 않고 높은 의자에 앉아 뾰족한 발톱으로 의자 아래 모든 것들을 할퀴었다는, 어떤 성격 나쁜 고양이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 무서운 고양이까지는 만나지 못했지만 무섭게 노려보던 고양이, 낮은 소리로 끝없이 으르렁대던 개는 봤던 것 같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아직까지 아프다.

다른 사람들을 이끌고 가르치는 사람은 그 지적 능력이 얼마나 뛰어난가보다 얼마나 인간적인가. 특히 자신보다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그 사람을 어떻게 대하느냐가 먼저 알려지고, 그것을 바탕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그 사람이 전달하는 '지식'이 얼마나 아름답고 유용한지와 그가 자신이 가진 그 아름답고 유용한 지식을 사람들에게 널리 알릴 준비가 되었는지(다른 사람을 가르치고 지도하는 것을 포함하여)는 별개의 문제다. 그 사람이 가진 게 그것(지식)뿐이라면 그 사람은 '나홀로 연구'를 해야 한다.

특히 과학기술인들은 '지식인'으로서 수많은 사람들(흔히 말하는 '대중') 앞에 설 기회가 많다. 얼굴을 드러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고, 목소리를 쓰기도 하고 활자를 이용하기도 한다. 정말 수많은 통로로 사람들과 소통하고 그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들이 전달하는 것은 지식에서 그치지 않기 때문에 강의를 통해서는 전달되지 않는, 그 사람의 사람됨이 훨씬 더 중요하다.
강의를 듣거나 짧은 대화를 나눈 뒤 그 사람을 '롤모델'로 삼는다거나 '존경한다'고 한다면, 여기서 무엇을 존경하고 무엇을 본받고 따르겠다는 것인지 다시 생각해보자.
그들의 '지식 수준'을? 아니면 그들의 '말솜씨'를? 나는 잘 모르겠다.

어린이의 푸념을 푸념으로 넘겨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진짜, 그리고 가장 솔직한 목소리다. 그들은 '사람됨'에 감동하고 상처입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누가 뭐래도 '아이들'(물론 나이가 어린 진짜 어린이, 아이들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이 가장 잘 안다.

진짜 선생님이란 자기보다 낮은 이에게서 배우는 사람이다. 진정한 가르침이란 내가 아는 것을 설파하는 게 아니라 내가 모르는 것을 부끄럼 없이 털어놓는 것이다.
꼭 선생님이 아니라 동료로서도, 누군가를 이끌고 내가 아는 것을 가르쳐줘야 할 일은 의외로 많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내가 무얼 '가르칠까'보다 '배울 수 있을까'를 먼저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앨리스는 크로켓 경기장 허공에 체셔고양이가 나타날 때 이런 말을 한다. "귀가 나타나기 전엔 아무 말도 듣지 못할 거야"라고. 그녀는 자기가 처한 상황을 말하기 전에 체셔고양이가 무슨 말을 할지 들을 준비를 먼저 한 거다. 체셔 고양이가 '들을 수 있을지'를 먼저 생각한 거다.

16.10.7 23:13

+ 솔직히 그때 쓴 글들이 더 읽기 좋은 것 같다.

728x90
반응형
Posted by solleap
,
728x90
반응형

나를 소개할 때 내가 한 것들 말고, 내가 앞으로 하고 싶은 것들을 말할 수 있다면 좋겠어
'이걸 하라'며 내게 밥숟갈같은 걸 쥐어주진 않을 거잖아.

아프다면 아픈 줄 알고, 왜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따져묻지 말고 얼른 나아라, 해줬으면 좋겠어
낫게 해줄 수 없다면 말이야.

16.10.8 23:46

728x90
반응형

'舊번 국도 > Facebook archiv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용기 있는 삶  (0) 2022.08.03
<요즘 젊은 것들, 사표>  (0) 2022.08.03
마이앤트메리 4시20분  (0) 2022.08.03
가지마, 가을  (0) 2022.08.03
끝말잇기-16.11.12 21:42  (0) 2022.08.03
Posted by solleap
,
728x90
반응형

답답한 마음. 잠이 안 온다.

https://www.google.co.kr/search?kgmid=/g/1s065_g9d&hl=ko-KR&kgs=f989624e89e90ff7&q=%EB%A7%88%EC%9D%B4%EC%95%A4%ED%8A%B8%EB%A9%94%EB%A6%AC+4%EC%8B%9C+20%EB%B6%84&shndl=0&source=sh/x/kp&entrypoint=sh/x/kp

4시 20분

마이앤트메리의 노래

www.google.co.kr

16.10.23 4:04

728x90
반응형
Posted by sollea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