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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겨울의 일주일>로 알게 되었던 작가 메이브 빈치. 세계 책의 날을 기념해서 짧게 쓰여진 소설이라고 한다(하지만 단편은 아니고 중편 정도 된다).
<그 겨울의 일주일>에서 따뜻하고 소박한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느꼈던 기억이 난다. 읽은지 몇 년이 되어 세세하게 감상이 기억나진 않지만, 이번에도 왠지 비슷한 느낌일 것 같다고 생각했다. 메이브 빈치가 묘사하는 사람들은 복잡하지가 않다. 그리고 정말 내 가족이고 내 친구의 모습처럼 특별하지가 않다. 그런 사람들로 소설을 써낼 수 있다는 게 메이브 빈치의 능력이었던 것 같다.
여기서도 등장하는 건 너무나도 평범한 한 가족이다. 대단히 특별한 갈등이나 대사 없이도 메이브 빈치는 재밌는 이야기를 한 타래 만들어낸다. (너무 멋지다!)
<풀하우스>는 가족에서 '엄마'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것을 우리가 얼마나 잊고 지내는지를 강하게 깨닫게 했다. 집에서 모든 것을 다른 사람-즉 엄마에게 당연하다는 듯 맡기고 자신은 편안하게 '지내기'만 하는(가정의 free-riders!) 수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꼭 보고, 깜짝 놀라고 미안해해야한다고 생각했다.
얼마 전 본 전도연, 설경구 주연의 영화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가 떠오르기도 했다. 전도연의 "하아-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대사다. 디가 바로 이런 말을 속으로 뱉지 않았을까, 생각하면서 말이다.
결국 갈등은 해결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책장을 덮으면서 오히려 머릿속에는 새로운 이야기와 질문이 떠올랐다. 애초에 디네 가족이 가졌던 갈등이 '갈등'으로 존재했어야 할 일일까? 그리고 이 질문은 이 이야기가 재미있는 소설이 되었어야 하는 이야긴가? 라는 것으로 바뀌었다.
항상 똑같고 반복되고 지루한 일상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당연하지 않은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경우가 너무 많다. 그런 부분을 메이브 빈치가 잡아낸 것 같다. '이건 당연히 당연하지 않은 것이야, 그런데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네. 그럼 이 당연해보이는 일상을 당연하지 않은 소설로 가져가보자.' 하고 말이다. 그래서 자칫 화내고 마음속에 불이 붙어 시커먼 그을음을 남기고 말만한 것인데, 재미있는 이야기가 되었다. 그래서 다행이다. 그리고 나는 당연하지 않은 소설의 세상에서 당연한 현실로 다시 발을 디딘다. 이제 당연한 것들을 다행인 것들로 바꾸려고, 재미있는 이야기로 생각해보려고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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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히틀러 나치의 유대인 학살이라는 만행을 직접 표현하기가 너무 괴롭고 힘들어서 "쥐"라는 캐릭터를 쓴 줄 알았다. 그러나 고양이와 쥐의 관계는 이 만화가 그려졌던 당시에 많이 쓰이던 소재라고 한다. 등장인물들이 어느 나라 사람인지에 따라 구분하는 것(그렇게 함으로써 개인이 아닌 '나라'를 대표하여 말하게 하려고)이 유일한 이유가 아니고, 어떤 동물을 사용했는지도 의미가 있던 것이었다.
이 만화는 제 1차세계대전에서 아우슈비츠를 경험한 저자의 아버지 얘기를 담고 있다. 분명 1차 세계대전 때 히틀러 나치의 유대인에 대한 만행과 학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맞지만, 마냥 그 얘기 속으로 파고들거나 무겁고 힘들어지지 않는다. 이 모든 이야기를 '아버지가 이렇게 말했다'는 식으로 전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이 이야기를 전하는 인물인 아버지, 블라덱과 저자 아트 슈피겔만의 사이가 아주 돈독하거나 가깝지 않다는 점이(저자는 오히려 그래서 자신이 아버지의 모습을 통해 아버지를 너무 정형화하거나 아버지의 안 좋은 모습을 부각시키게 되는 것은 아닌지, 자신에게 그럴 권리나 책임이 없지 않냐며 고뇌하지만) 다른 어떤 책에서 다루는 것보다 히틀러 나치와 1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들이 겪었던 참상을 더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느낌이 든다. 아버지가 전해주는 얘기는 분명히 주관적이고 단편적인 요소가 많다. 하지만 아버지의 이야기를 다시 전해주는 아트 슈피겔만이 완전히 그의 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믿음이 가는 것이다. 아트 슈피겔만은 이 점에 대해 많이 걱정했지만, 사실 블라덱이라는 인물이 미국에 사는 백인 유대인 할아버지의 모습을 아주 전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점(유대인을 정형화한다기보다 사실 이 인물의 캐릭터가 확실하다는 것이다)은 이 만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라고 본다.
만화책을 거의 보지 않는 편이지만 좋아하긴 한다(그림책도). 그림을 좋아할 뿐이지 많이 접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잘 알지는 못한다. 아트 슈피겔만은 <쥐>를 그리고서 사람들이 내용에만 집중하는 것에 아쉬워했다고 한다. 그가 그림을 그리는 방식, 만화를 구성하는 방식은 확실히 특별한 점이 있다. 마치 이원복의 <먼나라 이웃나라>(초등학교 저학년 때 도이칠란드편 하나를 겨우 본 게 다지만)를 보는 듯 글이 많고, 글이 주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만큼 그는 만화를 그릴 때 구성과 배치를 매우 신경썼다.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칸과 칸을 넘어 이어지는 그림도 있고, 정형적이지 않은 순서대로 그림이 배치되어 있는데, 너무 자연스럽게 눈이 순서대로 움직인다. 얼마나 구성과 배치에 신경을 썼으면 이렇게 될까!
또, 선이 꽤 굵고 음영도 많이 들어가있어서 처음에는 '판화같다'고 느낄 정도였던 데다 얼굴이 다 동물이라 똑같은데도 불구하고 등장인물의 표정이 살아있다. 눈썹과 거의 점으로 찍혀있는 눈 모양만으로 표정이 다 달라보이고 생동감이 넘치는데, 그림을 보는 게 정말 재미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말 대단한 점은, 이 책이 히틀러 나치를 피해 도망다니고 숨어지내고 또 결국 아우슈비츠에 가서 생활했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그 상황을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도면' 그림이 많다는 것이다. 건물의 구조, 단면도, 또 지도 같은 것들이 적재적소에 넘치지 않게 표현되어있어서 상황을 이해하는 데 엄청 큰 도움이 될뿐 아니라 읽는 재미를 배로 더해주었다.
단순히 그림이 자극적이고 빠르게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풍부한 이야기를 담고 있고, 글로는 차마 다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담아내는 것이 만화책의 역할이고 좋은 만화책인 것 같다. 고뇌하고 힘들어하면서 이런 좋은 만화를 만들어낸 아트 슈피겔만의 다른 작품들에도 흥미와 관심이 무척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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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생각해도 되나, 라고 끊임없이 되물으며) 1905년에 쓰인 러시아 소설에 이런 것이 있다니, 라고 생각했다. 이 소설은 희곡같다. 각각의 장이 연극 무대를 떠올리게 한다. 인물의 표정 묘사가 정말 디테일하다.
러시아가 제국에서 사회주의 국가로 변모하기 전 사회가 배경인데, 처음 사회주의 국가가 어쩌다 생겨나게 된 것인지 일반적인 사람들-이 소설에서는 농군과 노동자들, 즉 민중의 입장에서 이해할 수 있었다. 민주주의와 사회주의 모두 장단점이 있다. 결국 이것들은 하나의 이념이고 사람들의 머리에서 태어난 것이니까 어떻게 받아들이고 실제에 적용하느냐에 따라 그 모습은 엄청나게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사회주의 하에서 어렵게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문학은 많이 접했던 것 같은데, 이렇게 사회주의를 염원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걸 접하니 새롭게 배우는 점이 많았다. 억압하는 사람들의 나쁜 모습을 보여주거나 사건과 갈등에 집중하기보다 사회주의를 원하는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이 서로 무엇이 옳고 정의로운지를 논의하는 모습이 많이 나온다. 하지만 이 소설은 '사상'에 대해 얘기하지 않는다. 주인공이 점점 더 사회주의에 대해 관찰과 직접 경험만으로 배워나가는 걸 따라가다 보면 사회주의 자체를 이해한다기보다 사회주의를 이해하는 사람을 이해하게 된다. 사회와 인간에 대해 얘기하는 소설인 것이다.
그리고 주인공을 어머니로 두었으리라고는 처음엔 예상하지 못해서 장이 넘어감에 따라 조금 놀라기도 했지만, 이 놀람은멋있고 좋아서 놀란 것이었다. 그 시대에 여성, 배우지 못한 사람, 노동자(이지만 직접적이고 적극적으로 공장같은 곳에서 일하는 것도 아니며 농민도 아니다), 나이든 사람인 '어머니'를 주인공으로 삼은 막심 고리키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그 시대에 어떻게?! 라는 마음보다도 그가 얼마나 뛰어난 작가였는지에 대해서다. 아들과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만 가지고 있던, 지식을 배운 적 없던 어머니가 자연스럽게 모든 것을 이해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인물이 되는 모습을 보면 사회주의를 원하던 사람들이 정말 바라고 지향하던 것이 무엇인지 너무나도 효과적으로 알 수 있다. 누구나 행복하고 누구든 자기 의지를 가지고 평등하게 사는 사회라는 것이다(물론 이론처럼 실제가 이렇게 되진 않았지만). 어머니뿐만 아니라 어머니가 만나고 교류하는 사람들도 매우 다양한데, '나리'로 불리던 사람부터 병든 사람, 거친 사람, 농군, 공장 노동자, 남자와 여자, 나이든 사람부터 어린이까지 등장한다. 그리고 그 누구든 서로 대화를 나누고 교류하면서 금세 하나가 된다. 이렇게 사람들이 하나되는 데에는 이성과 마음 모두가 필요하고, 돈이나 지위가 아닌 정의와 사랑(친절함)만 있으면 되는 것이라는 게 여러번 인물들의 대화를 통해서도 나오고 장면묘사를 통해서도 보여진다. 누구나에게 연민을 가지고, 조금만 친절하고(왜냐하면 "친절한 말은 돈이 안 드니까"), 욕심을 부리지 않으면 세상은 행복해질 수 있고, 그 안에 사는 나도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사회주의가 옳냐 그르냐 무엇이 정의이고 옳은 것이냐, 누가 결국 승리하느냐와는 무관하게-소설은 결국 누가 승리하는지 보여주지 않고 끝나니까, 인간다움이 무엇인지를 절절하게 보여주면서 마음을 울리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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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2일

日번 국도 2023. 1. 22.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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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행복을 여러 조각 모았다.
마음 속이 아직 파도가 심하게 치는 어두운 하늘 아래의 바다지만, 그래도 행복의 조각을 몇 개나 모아서 오늘은 좀 낫다.

위빳사나 책을 얼른 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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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쩜 이렇게 멋진 여성이! 비록 그 사람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전혀 없지만, 글을 통해 보여지는 그의 모습은 너무나도 멋있다. 요즘 어디서도 볼 수 없고, 과거에는 더더욱이 볼 수 없었을 것 같은 사람이다. 털털하다못해 조금 퉁명스럽게까지 느껴질 때도 있는 장영희씨의 말투는 그만의 매력이고 특징이다. 오히려 그래서 더 위로를 주는 그 목소리에 반해버렸다.
평생을 살면서 그는 다른 것보다 자신의 신체적 특징(이게 적확한 표현일지 모르겠다)에만 관심을 많이 받았을 것이다. 몸이 힘들면 마음도 힘들다는 말은 진짜다. 내 자신에게 자꾸만 신경쓰고 나를 감각할수록 세상에 관심을 가지기 어렵다. 몸이 불편했던 지난 시간들을 떠올리면 난 항상 그랬다. 몸이 움직이는 만큼만 세상을 감각할 수 있었다. 내 몸이 움직이는 반경이 줄어들면 세상은 너무나도 빠르게 내 자리였던 영역을 차지하고, 좁아진 내 자리를 무섭게 넘봤다. 이런 내가 보기에 장영희씨는 몸이 차지하고 움직일 수 있는 영역이 정말 좁은 사람이었을 것 같은데, 전혀 그렇지가 않다. 물론 글에 그런 얘기를 많이 담지 않았을 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무작정 희망차거나 밝지도 않으면서 너무나도 씩씩하다. 글에서 스스로 밝혔듯 '저벅저벅' 걸어다니면서 좋고 나쁜 모든 운을 흔들어 깨우는 사람이었다.
일부러 위로하거나 기운내라고 말하는 보통의 말들은 너무 질린다. 질리고, 뻔하고, 할 말이 없는데 지어내는 것 같은 상대의 반응이 오히려 나를 더 피로하게 만든다. 괜찮다, 고맙다는 대답을 실컷 해주다보면 위로의 대상은 어느새 나에서 상대방으로 넘어가버린다. 그런데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런 상대들에게 너무 익숙해져버렸던 것 같다. 그러다보니 내 자리를 점점 좁히면서 침울해지고 가라앉고, 장롱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가 앉아있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그것이 내 자격이고 그래야 하는 일이라고 여겼던 것도 같다. 장영희씨의 글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 담긴 글 속의 그는 아무렇지 않게 살았다. '~보다'라는 말이 그의 삶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보인다. 무엇을 이겨낸 적도 없고, 무엇에 시달렸던 적도 없이 그냥 누구보다 평범하게 살았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멋있다. 짜증날 땐 짜증을 내고, 신경질이 나면 신경질도 화도 내고, 누구를 미워도 하고, 비웃기도 하며 살았다. 그러면서 또 행복해하고 웃고 감탄하기도 하면서 살았다. 자신을 찾아온 제자에게 어떨 땐 뻔한 위로의 말을 건네기도 했고, 게으름을 있는대로 부리기도, 독자의 말에 고마움을 느끼기도 하면서 살았다. 하지만, 그 어느것에도 아주 힘을 써버리지는 않으면서 살았다. 거의 매 순간 내 모든 간장을 다 녹여내듯 살아온 나는 그의 모습에 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장영희씨처럼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책에 나오는 김점선씨의 그림을 보고 그는 빨간 말이 어딘가로 웃으며 달려가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계속 그 그림 속 빨간 말이 풀숲에 누워 웃으며 쉬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내가 달리고 있을 땐 항상 긴장된 얼굴로 주위를 보기에 바빴던 것 같다. 반대로 그는 항상 멀리 보이는 재미난 것을 향해 달려갈 때야말로 웃는 얼굴을 했던 것 같다. 주위에 누가 어떤 표정으로 날 바라보는지, 무슨 말을 하고 있고 나에게 무엇을 바라는지 연연하지 않으며 멋지게 웃으면서 달려갔던 것 같다. 그 기운이 글에 담겨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이 엄청난 위로가 되었다. 이거야 말로 진짜 위로였다. 멋지게 사는 그의 모습을 보는 게, 일부러 힘내라고 말할 필요 없는 모습이 위로였다. 지금은 세상에 없는 사람이지만, 그를 꼭 알고 지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처럼 살지 않으려고 말이다. 이제라도 장영희씨처럼 항상 '저벅저벅' 걷고, 게으름도 부리고 짜증도 많이 내고 그러면서 또 껌뻑 속기도 잘 하면서 살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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