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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문고 전자도서관을 통해 처음 본 책이다.

박완서씨의 글은 고등학생 때 역시 수필집이었던 <너무도 쓸쓸한 당신>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 때는 딱히 재미가 있다고 느꼈던 것 같진 않았는데, 이번에 읽은 이 책은 정말로 '재미'가 있었다.

그의 수수하면서 아이같은 말투와 생각, 마음들이 너무 따뜻하게 다가왔다.

우리 엄마와 닮았다고 느껴졌던 그의 글을 읽다 아무것도 아닌 얘기에서 울컥울컥 눈물이 나려고도 했다.

 

작년부터 몸이 좀 약해지신 우리 엄마는 내가 기숙사 생활을 했던 고등학생 때, 주말을 집에서 보낸 뒤 월요일마다 학교가는 가방 안에 작은 카드를 써서 넣어주셨다. 정말 2년 내내 하루도 빠지지 않고말이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우리 엄마를 자꾸 생각나게 하는 박완서의 말투와 글 속에 녹아나는 그의 모습 때문에. 엄마 때문에 눈물이 자꾸 치밀었던 것 같다.

우리 엄마도 강해보이지만, 되게 소녀같고, 아이같은 분이시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며 본 박완서 역시 나이도 할머니뻘이고 힘든 일도 많이 겪었지만 아이같았다, 그것도 "너무".

또 한 가지 마음에 들었던 점은,

그는 딱, 있는 만큼만 있는 체 한다는 거였다.

없는 것, 모르는 것에 대해서도 있는 척 잘난 척 하는 것은 정말 보기 싫다.

근데, 이만큼 잘난 사람이 겸손하게 군답시고 그보다 못난 척 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보기 싫다.

그런데 박완서는 딱 자기 잘난 만큼 그 만큼만 잘나하고, 못난 데는 못난 딱 그 만큼만 못나했다.

그런 그가 마음에 들었다.

 

한 달 전 쯤에 김훈의 칼의 노래를 절반 읽었는데, 칼의 노래나 남한산성의 내용에서 미루어짐작했던 김훈의 모습과 너무나 달랐던, 글 속에서 내가 발견한 그의 모습과 더욱 대조적으로 느껴져서 더 좋았는지도 모른다.

많이 꾸미거나 애써서 다듬지 않은 문장들. 진짜 푹 고은 된장찌개같이 자글자글 진한 냄새를 풍긴는 그의 표현과 단어 하나하나들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책을 읽으며 한 단어를 배웠다. '구메구메'.

누군가 박완서에게 바리바리 물건을 싸줬던 얘기들에서 이 단어가 자꾸 등장했는데, 그래서 더 느낌이 따뜻했는지도 모르겠다.

 

결코 약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어린 아이같은. 그래서 어딘가에서 누가 등을 보이고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고 있으면, 꼭 나타나 앞에서 두 팔을 붙잡고 해맑게 웃어줄 것 같은 사람.

꼭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한 사람.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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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할 때부터 사람들의 인기와 관심을 많이도 받았던 영화.

건축학이라는 학문은 예전부터 사람들에게 예술적이라는 인식과 함께 선망과 동경의 대상이어왔던 것 같다.

일단 이 영화의 내용을 한 문장으로 말하자면,

'건축학'이란 것에 대한 이 막연한 동경과 선망을, '대학 신입생'이라는 또 하나의 설레이는 단어 안에, 첫사랑에 대한 동경과 선망과 함께 잘 버무려 채워넣은 영화였던 것 같다.

(써놓고 보니 무슨 알 수 없는 맛의 설레이는 만두를 묘사한 기분이 드는군-.-ㅋ)

 

여튼, 나에게 있어서 이 영화는 '참 정신없는 기억'이다.


영화만을 놓고 본다면 너무 마음에 안 들었다. 음..사실 영화가 마음에 안 들었다는 게 아니라, 영화를 보고 나서, 그 영화에 나오는 인물이 너무 마음에 안 들었던 거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한가인이 맡은 역할이 나는 너무 마음에 안 들었다.(본 지 오래되어 인물 이름이 기억이 안 나 배우로 그냥 얘기하겠다.)

대학 시절 얘기는 예뻤다 마냥. 순수하고, 솔직하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말 있음직한, 그런 현실적인 얘기라서 좋았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서 엄태웅을 다시 찾아온 한가인은 정말이지 "너무 마음에 안들었다".

그녀는 진심으로 엄태웅을 사랑한 것도 그리워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과거에 그녀가, 그리고 그가 그녀를 사랑했었던 사이었기 때문에, 현재의 외로움에 대한 대책으로 다시 '사랑받는 기분을 느끼고 싶어서' 엄태웅을 찾은 것 뿐이다.

그에게 다시 돌아가면 아주 조그만 변화나마 없을 수는 없을거란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솔직하게 그녀 안에 그 어떤 사랑이나 감정이란 것 자체가 이제는 존재하고 있지 않다, 과거의 기억 속에 자리한 그 때의 달콤하고 설레이는(사실 이 기억이 달콤하고 설레이는 것은 그 과거에 존재하고 있는 순수함과 솔직함 때문이지만.)감정의, 그 "달콤한 맛"이 그녀는 단순히 '그리웠을' 뿐인거다. 1차적인 욕구로서의 그리움이었을 뿐인거다!

이렇게 해서 그녀가 결국 얻을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가 그녀의 등장으로 인해 흔들리는 모습을 보고, 그녀를 향한 마음이 아직 그의 마음 밑바닥에 껌딱지처럼 붙어있다는 사실을 확인함으로써 아무것도 남들 앞에 내세울말한 물질적인 것이 없어진 지금 자존감을 조금이라도 느끼고 싶었던 거였을테다.

어찌보면 마지막 발버둥이라고도 생각되어서 가엾고 안된 것 같기도 하지만

그래도 난 그녀가 정말 엄태웅을 사랑했던거라면, 그리고 친구로 여기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남아있긴 한거였다면 그래선 안됐다고 생각한다.

잠시였지만, 그리고 감정이 있어서 그랬다기보단 과거의 기억때문에 그랬던 것일 뿐이지만,

엄태웅에겐 지금 그 때의 과거와는 얽매여있지 않은 삶이 흘러가고 있는데 그것이 방해받을 수도 있는 일이었으니까.

그래서 난 그녀가 너무 싫었던 거다. 그냥 좀 밉거나 별로다- 가 아니라, 정말 싫었다.

 

누구든 한번쯤 현재는 너무 힘든데 과거의 행복한 기억을 떠올리는 걸 멈출 수 없어서 '다시 그 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하고 생각해본 경험이 있을거다. 꼭 현재가 그리 힘들지 않더라도 지나간 과거 속에서 너무 행복한 나의 모습 때문에 그 때의 그 행복함, 그 감정들을 다시 불러오고 싶다고 생각해본 적이 있을거다.

하지만, 현재는 현재로 살아내야 하는거다. 지나간 것들에 얽매여서 다시 그것이 '반복'되기를 바라선 안된다. 지나간 것을 다시 불러내고 그것이 똑같이 반복되길 바라기만 한다면 절대 앞으로 그 순간보다 더욱, 아니 그 순간 정도로 행복한 순간 조차 만들어낼 수 없게 된다.

물론, 지난 그 과거의 순간보다도 못한 시간들만 계속 만나게 될 수 있다. 물론이다. 하지만, 사실 우리는 늘 어떤 큰 가능성이나 확신이 아니라 캄캄한 어둠 속에서 바늘구멍만한 빛줄기 하나를 보고 살아가는 것 아닌가? 아주 작은 겨자씨만 한 것이라도 가능성과 희망이라는 것의 '존재' 그 자체만으로 우리는 현재를 살고, 미래를 향해 가고 있는 것 아닌가?

한번이라도 왜 지나간 순간이 더욱 값지고 아름다워보이는것일지 생각해본 적이 있는지? ㅡ 우리가 그렇게 느끼는 순간은 현실 속에서 우리가 나태해지고 안일해지기 시작하는, 바로 게으름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과거는 "그 때 행복했었다." 라는 그 기억 자체만으로 가치가 있는 거다. 딱 그 뿐이라는 거다. 그것은 말 그대로 '과거'일 뿐이기 때문에 그 이상의 어떤 가치도 가지고 있지 않고, 가질 수도 없다.

우리가 게을러지는 그 순간, 우리는 이 사실을 잊어버린 체 하고 스스로를 속이며 그 기억 속에 파묻히려고 한다.

잠깐의 위로는 괜찮다. 하지만, 과거 속으로 한없이 파묻혀들어가면 아침에 일어나기 싫은 이불 속에서처럼, 깜빡 잠이 들어버릴 수도 있다. 1분이 1초같이 느껴지는 그 잠속으로 말이다.

과거란 것은 과거에서 충분히 즐겨졌어야 하는 거다. 과거를 현재에 즐기려고 하면 현재가 충분히 즐겨지지 못하고, 이것은 또 과거로 남겨져 미래에서 즐겨져야 할 거다. 식은밥을 먹으며 새 밥을 짓고, 새 밥은 또 식은 밥이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거다.

좋은 기억은 좋은 기억대로 충분히 행복하게 즐겨져야 하는거고, 나쁜 기억 역시 과거에서 충분히 아파지고 배울 것이 있었다면 그 순간에 깨달아졌어야 한다. 시간이 지난 뒤 한번 쯤은 다시 오랜 시간 곱씹어볼 수도 있겠지만, 과거를 분석하고 한 번 갔던 길을 또 걸어보느라 현재를 놓쳐버릴 정도로 시간을 보내면 그것만큼 어리석고 안타까운 일이 없을 거다.

영화에서 마지막엔 한가인도 새로 자리를 잡고 새 삶을 시작하게 되지만, 그녀의 과거 속 사람인 엄태웅이 흔들리지 않고 현재를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에 한가인 역시 과거에 안일하게 파묻히지 않을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과거, 또는 기억이라는 그 이불은 생각보다 훨씬 폭신하고 부드러워서 왠만하면 빠져나오기가 여간 힘들지 않다는 것을 꼭 기억해야겠다.

씁쓸한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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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가 너무 끌린다. 근데 이게 거의 모든 일본 소설들의 공통점이라는 건 웃기다. ㅋ

일본어가 그런 것일까, 일본의 것들은 단어를 참 달콤하게 조합을 잘 해 놓는다.

일본 소설을 딱히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아니, 아니었다.

외려, 제일 먼저 제목을, 그리고 표지를 살펴보고 책을 고르는 나에게 있어 이렇게 달콤하게 단어를 조합하는 일본문학은 일단, 시선끌기에서부터 1등이다.

그런데 이 소설을 읽고 나니 '일본 소설은 다 똑같구나.' 하는 느낌이 들어서 일본 문학 자체가 별로라고 느껴져버렸다.

배경과 인간관계들이 다 너무 비슷하다. 라는 느낌이 들었다. (일본어라는 그 말의 어투 때문에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그 배경과 그 인간관계들이 개인적으로 나의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인거지만.

어쨌든. 그렇다고.

그랬다고.

 

카라멜 팝콘에 등장하는 세 커플들. 부모님, 형, 동생.

이 소설은 네 개의 계절에 형 부부와 동생 커플 네 사람의 시선을 보여준다.

그치만, 같은 사건을 다른 시선으로 보여주는 게 아니라, 네 개의 계절에 '한 시공간에 있어야 할' 네 사람 각자의 삶을 보여준 점은 재미있었던 것 같다.

네 사람의 성격이 너무 다르다. 다들 개성이 뚜렷하다거나 좀 별난 사람인 것은 아니다.

다들 평범한 사람들이지만, 다르다. 그 점이 이 소설에서 딱 하나 좋은 점이었다.

평범한 이야기라는 것.

그리고 이게 이 소설에서 말하고자 했던 전부가 아니었을까도 싶다.

 

그런데, 제목은 왜 카라멜 팝콘이었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첫 장면에서 전화를 받느라 아주 조금 부주의해지는 바람에, 아주 달콤하고 맛있는 카라멜 팝콘이 될 수 있었던 냄비 속의 팝콘과 시럽은 엉망이 되어버린다.

그 카라멜 팝콘처럼 아주 평범하고 아무렇지 않은 우리의 하루하루에도

'아주 조금'의 주의가 필요하다는. 그런 얘기였던 걸까.

 

여차하면 깨지기 쉽다. 사실 이 말은 '깨뜨리기 쉽다'고 해야 더 맞을 것 같다.

하지만 우리는 깨지 않는다. 왜냐하면, 지금 이 현실이 즐겁고 행복한 것은 아니지만, 깨뜨리고 나면 그 유리조각을 치우기가 또 귀찮거든.

또, 깨끗이 치우기가 힘들다는 문제도 있고.

그냥 팝콘도 물론 맛있다. 그냥 먹으려면, 애초에 별 생각 없이, 시럽을 만들어 카라멜 팝콘으로 해 먹었으면 어땠을까, 상상하지 말고 정말 '생각 없이' 팝콘을 먹는 게 좋다.

그리고 시럽을 만들어 카라멜 팝콘을 해 먹을 생각을 기왕 할 거라면, 제대로 하고 시작하는 게 좋다.

만드는 것은 정말 간단하고, 아주 약간의 주의만 있으면 되는 일지만,

그 '아주 약간의 주의'는 아주아주 짧은 순간동안만 놓치더라도 일을 아주 망쳐놓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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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서 하는 이벤트로 연극 <과부들>의 초대권을 받게 됐다.

종강하고 집에 왔는데, 마침 오빠도 시험 전 마지막 주말이라 집에 온다고 해서 오빠랑 보러가게 됐다.:)

대학로에서 소극장 공연은 몇 번 보러 간 적이 있지만, 아르코예술극장에 들어가 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것도 대극장! 규모도 크고 뭔가 화려하지도 않은데 깔끔하고 아늑한 분위기여서 마음이 편해졌다 :)

자리도 R석으로 앞에서 둘째줄에서 봤다 ㅋㅋ 처음 보는 제대로 된 연극 치고는 너무 좋았던 데다 오빠랑 오랜만에 봐서 더 좋았다:)

앞 얘긴 여기까지만 하고!

 

연극 <과부들>은 남자들이 모두 실종되어버린 어떤 마을의 이야기다.

평화롭게 잘 살던 마을이었는데 어떤 부자 지주가 그 마을의 땅을 자기 소유로 만들면서 사람들을 내쫓아버리고,

지각있는 남자들이 그 지주에게서 자신들의 땅을 되찾으려하다가 모두 잡혀가게 된 것이다.

잡혀간 남자들은 모두 행방불명되고 다신 마을로 돌아오지 못하게 되었다.

마을에 남은 여자들은 이 연극의 부제처럼 '기다리는 여인들'이다. 떠나버린 그들의 남편, 아들, 아버지를 기다린다.

하지만, 사실 그들 중 정말로 '기다리는 사람'은 소피아 한 사람 뿐이다.

나머지 여자들은 예전과 다름없이 평범한 삶을 계속 살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말처럼 그들이 잊은 건 아니다. 다만, 그들은 외면하고 싶은 것이다. 마주할 수 있을만 한 용기를 내는 것이 두려운 것이다.

 

마을에 새로운 대위가 온 뒤 그들에게 '얌전히 지내면 남자들을 돌려보내주겠다'고 하자

그들을 자극하고 있다며 소피아에게 마을의 다른 여자-소피아의 친구인 다른 할머니-가

"남편이 돌아왔을 때, 우리는 밭에 나가 일을 하고 있거나, 시장에 나가있는 게 나아!"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었다.

남자들이 돌아왔을 때, 소피아처럼 모두가 자신들을 기다리기'만' 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을 경우와 소피아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처럼 자신들이 없어도 자신들이 있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평범하게 삶을 유지하고 지내는 모습을 보았을 경우에 정말, 무슨, 차이가 있는걸까?

사실 두 경우가, 나는, 차이가 없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소피아와 나머지 여자들 모두 다 마음속에 그들이 잃어버린 그들의 남자들을 잊지 않고 기다리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차이는 단지, 소피아의 경우 '자신의 삶'이란 것은 애초에 욕망은 커녕 마음에 두고 있지를 않았고, 그녀가 잃어버린 아버지와 남편과 아들을 다시 되찾는 것-그 시신이라도-이 그녀에게 지금 가장, 그리고 유일하게 중요한 일이고 해야 할 일인 것이고, 다른 여자들의 경우, 그들이 잃어버린 남자들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게 아니라, 자신의 삶 '역시'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일 뿐이다.

사실 속으로는 모두가 그 시신이 자신이 잃어버린 그 남자라고 생각하고 싶어했던, 시신을 대하는 여자들의 태도에서 이런 생각도 들었다.

그 누구도 '답이 없는 상황'. '해결되지 않은 상황'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인 거라고.

이 세상에 끝맺음이 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서 끝맺음이 나지 않은 것은, 끝맺음을 '해야'하지만, 이 연극에 등장하는 여자들은 이 상황에 대해 어떤 방법으로도 '끝맺음'이란 것을 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애초에 이 '끝맺음이 나지 않은 상황'자체가 없는 것처럼 외면하고 있는 것인 거라고.

그 상황 말고도 그들에겐 돌봐야 할, 해결해야 할, 그리고 어떻게 하면 해결하고 끝맺음을 할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잘 알고 있는 것들이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그들이 해결할 수 있는 그것들을 하려는 것이다.

자신의 무력함을 느끼고 싶지 않기 때문에.

해결하지 못하고 무력감을 느낀다면 살아있다고 느끼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고, 이것은 정말 두려운 상황일테니까.

 

극의 마지막에서 결국 여자들은 더 이상 얌전하게 굴지 않는다.

그들은 마음 속에 덮어놓고 있었던 생각을 드러내고 그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향해 행동한다.

결국 그들은 모두 죽게 되지만, 눈을 감고 살아가는 것보단 눈을 뜨고 죽음을 맞이하는 게 낫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백만년을 살아도 장님으로 산다면 그건 살아있는 게 아닌거다. 1초밖에 살지 못하더라도 눈을 뜨고 있어야 그것이 사는 것 아닌가.

이 연극에 등장하는 과부들은 그들이 '끝맺음'을 하지 못하는 데서 무력감을 느끼게 될까 봐 두려워했지만,

사실 살아있음이란 건 해결이 됐는가하는 "결과"가 아니라, 끝맺음을 하고자 노력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것이란 걸 마지막에 깨달은 것 같다.

 

연극 자체는 배우들의 연기력이나 표현력이 정말 너무 뛰어났던 것 같다.

극이 끝난 뒤 무대인사를 나왔을 때 아직도 너무 몰입해서 표정이 너무너무 심각한 것이 멋져보이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내용과는 상관 없는 얘기지만, 극 중에서 강물을 따라 시신이 떠내려오는 것을 표현하는 방식도 참 마음에 들었다고 꼭 말하고 싶다.

(그리고, 소피아의 손자 알렉세이 역할을 맡은 꼬마가 너무 귀여웠다는 여담. :)

하지만 극 자체의 길이도 너무 길기도 했고, 극의 배경이 외국-남미-이다보니 등장인물들의 이름이나 지명 같은 것들을 쉽게 알아듣기가 힘들어서 관객들의 집중도를 100%끌어내지 못했던 것 같다.

인터미션을 전후해서 여인들이 함께 노래부르는 장면에서 다소 지루함이 느껴졌고,

내용과 극의 성격(장르)때문에 잘 집중하지 않으면 스토리 자체를 이해하지 못 할 수도 있을 것 같았기에, 이 점, 너무 아쉬웠다. (심지어 내 왼쪽에 앉으신 아주머니는 막 조셨다... ㅠ)

 

연극 본 지 2주 가까이 지난 뒤에 리뷰를 쓰다니 나도 너무 게으르다. 기억이 완전히 나지 않으니 글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 밖에 없다.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하다 보니 그쪽으로 자꾸만 생각이 가는 게 쓰면서도 쓰고 나서 읽으면서도 자꾸 느껴진다.
에휴 그래도 뭐 어쩌겠어 이젠 부지런하게 남기고 미루지 않으면 되는거지! 하고 생각하고 이대로 저장할란다, 에몰라!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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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문고 이벤트로 시사회가 당첨되어서 CGV왕십리에 가서 보았다.

ㅠ알림문자엔 분명 8시 30분이라고 되어있었는데, 실제로는 8시 시작이었어서 앞 20분 가량을 놓쳐버렸지만 ㅠㅠ

어찌되었든, ㅎ 이 영화 정말 순수하고 귀엽고 따뜻하다.

정말, 너무 귀엽다. 진짜 영화 보는 내내 두 손을 맞잡고 입을 가리고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정.말.로. 너무 귀엽다 !

요즘 이렇게 순수하고 귀여운 영화가 어디 또 있을까!

 

남편이 자동차 사고로 죽었고, 그를 지금까지도 너무너무 사랑하지만, 새로운 사랑을 시작한 여자 나탈리.

나탈리라는 인물이 정말 순수하고 아름다워서-마음이나 태도가 모두 순수하고 기품있는데다 능력까지 있고, 거기에 외모까지 아름답다!- 그 인물 자체만으로도 정말 매력적이지만,

영화를 보고 난 내가 나탈리를 정말 사랑하게 된 이유는, 그녀의 새로운 사랑은 원래 남편에 대한 사랑을 덮고 그 위에 새로 생겨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남편 프랑소아에 대한 사랑 안에서 자라난 새로운 싹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르퀴스라는 인물 역시 너무 사랑스럽다.

처음에는 클레이 애니메이션 캐릭터인 '월레스와 그로밋'의 월레스를 떠올리게 하는 외모(특히 그 헤벌어진 입술 사이로 보이는 벌어진 앞니!) 때문에 너무 바보같아 보였지만,

영화가 전개될수록 드러나는 그의 진가가 처음의 그런 이미지에서 비롯된 인상 때문에 더욱!! 그 매력에 더 깊게 빠지게 한 것 같다.

특히 에펠탑에 점등이 되는 순간 나탈리를 보지 못하고 '자기 자신을 보호하겠다'며 달아나는 장면은 진짜 너무 귀여웠다 :-)

 

바로 어제 운전면허학원 셔틀버스 기사아저씨가 남자는 외모보다 경제력이 최고라며 돌아오는 길 20분 내내 얘기를 해주셨는데,

외모 같은 것이 정말 다 무슨소용이랴. 하지만 경제력 같은 것도 사실, 소용없긴 마찬 가지다. 아니, 사실 세상을 사는 데 있어 소용이 없다고 말 하는 것은 정말 거짓말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비교할 수 없이 중요한 게 있다는 거다.

마르퀴스는 솔직히 말해서 외모도 별로고, 집안도 별로인데다 능력이 뛰어나서 돈을 잘 버는 남자도 아니다.

그렇지만, 그는 사람이다. 게다가, 심지어, '따뜻한' 사람이면서 동시에 '재밌는'사람이기까지 하다..

그게 문제인거다. 너무, 심각한 문제다. (여기서 난 정말 나쁜 습관이지만 자판의 'ㅠ'를 누르지 않을 수가 없다)

어떤 관계로 알게 된 그 어떤 사람이라도. 사람인 사람을 만나기란 정말 쉽지 않다. 게다가 "따뜻한"사람이라니..

 

마르퀴스가 따뜻한 사람이란 걸 아는데엔 딱 한 장면으로 충분했던 것 같다.

바로, "페즈 캔디(Pez Candy)"

 

정말 오랜만에 꾸미지 않은 순수한 마음이란 걸 느끼게 해 준 영화였다.

 

+아, 그리고, 영화 OST 중 맘에 드는 곡이 있어서 찾아보았는데, 한 가수의 노래였다!
(아님 그냥 soundtrack에 실린 노래들을 이 가수가 불렀거나.. 이 앨범 중 몇 곡이었는지도.. ㅋㅋ 검색해보다 못 찾아서 친구가 링크를 걸어준건데 soundtrack이라는 정보는 없었어서 잘은 모르겠답 ㅎㅎ)
Émilie Simon 의 Franky Knight라는 앨범. Something More, Mon Chevalier이 특히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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